[미디어 비평] 가짜 뉴스 판별력이 필요한 시대
이화행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조작된 정보 양산 우려 AI 시대 도래
펜타곤 가짜 화재 소식에 증시 혼란
뉴스 이용자 진위 판단 능력 요구돼
저널리즘 품질·신뢰도 제고에 중요
뉴스가 나의 삶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아니, 나의 일상이 뉴스에 의해 지배당하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은 없는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2014년 펴낸 저서 〈뉴스의 시대〉에서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 나가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뉴스를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뉴스이다”라고 강조했다. 뉴스 이용의 아이러니를 피력한 표현이다. 뉴스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공기와 같은 존재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뉴스 과소비로부터 벗어나 현명한 뉴스 소비 방법을 찾는 현대인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대이다.
급속한 속도로 발전해 온 디지털 기술은 뉴스의 생산에서부터 유통과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치며 정보 과잉의 시대를 불러왔다. 뉴스 산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정보 생산자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였고, 디지털화된 정보는 다양한 언론 매체와 소비 플랫폼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시공을 초월하여 빠르게 유통되고 있다. 뉴스 이용자들은 높아진 소비 편의성에 힘입어 정보 욕구를 무제한으로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말 미국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면서 촉발된 AI(인공지능)를 이용한 가짜 뉴스 생성의 가능성까지 추가되면서, 정보 과잉의 시대에 뉴스의 진위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이용자의 뉴스 리터러시(Literacy) 역량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 22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펜타곤 건물에 불이 났다는 소식이 사진과 함께 트위터에 올라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확산하면서 미국 주식시장이 출렁이는 대소동이 일어났다. 러시아와 인도의 언론이 이 소식을 긴급 뉴스로 인용 보도하는 등 일파만파의 파장을 몰고 왔다. 관할 버지니아주 알링턴 소방서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공식 발표가 나오고서야 이 소란은 겨우 진정될 수 있었다. 또 시꺼먼 연기가 치솟는 해당 뉴스의 사진은 AI가 생성한 가짜 이미지인 것으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에 의해 밝혀졌다. 이번 소동은 AI발 가짜 뉴스가 현실 사회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첫 사례로 세계 언론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난 3월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들 사이를 달리는 한 얼룩말의 영상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이 영상이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자 세계 주요 언론들도 앞다퉈 해외토픽으로 보도하였다. 처음 이 영상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작된 거짓 영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세로’라는 이름을 가진 얼룩말이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했다는 사실이 동물원 관계자를 통해 알려지면서 가짜가 아닌 진짜 뉴스였음이 드러났다. 골목길에서 오토바이를 탄 남자와 세로가 마주친 사진이나 골목길에서 놀라 달아나는 남성 뒤로 세로가 달려오는 영상은 조작된 이미지와 영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생경한 장면이었지만, 결국은 가짜 뉴스 같은 진짜 뉴스였다.
올 3월 개최된 202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낸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국내 언론과 국민의 혹독한 질타를 견뎌 내야만 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도쿄 참사’라고 불리는 한·일전 패배를 포함하여 한국팀 부진의 최대 요인으로 투수진 문제를 꼽았다. ‘국민감독’으로 불리는 김성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한 방송에 출연하여 한국 야구의 투수진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했다. “빠르게 던지면 뭐 하나. 제구력 없이는 타자가 기다리면 걸어서 나간다. 투수는 제구력을 키워야 한다. 캠프에서 하루에 2000개씩 던지면 된다. 그러면 제구력이 생긴다.”
야구에서 타자의 선구안은 타석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의 구질과 스트라이크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타자에게 요구되는 매우 중요한 역량이다. 투수가 공의 속도나 방향을 조절해 던지는 제구력을 키워야 한다면, 타자는 선구안을 키워야 한다. 선구안이 좋으면 개인 타격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출루율이 높아져 팀 승리에도 기여하게 된다.
정보 과잉 시대에 가짜 뉴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뉴스 이용자들이 정보의 진위를 빠르게 판별해 내는 선구안을 필요로 한다. 뉴스 이용자의 선구안은 뉴스의 신뢰도와 품질을 기준으로 삼아 언론 기능을 훼손하거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방기하는 가짜 뉴스 등 각종 나쁜 뉴스들을 걸러 내는 안목이다. 즉, 뉴스 리터러시 역량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현명하고 합리적인 뉴스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모여야 한국 저널리즘의 품질과 신뢰도를 높은 수준으로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무분별한 뉴스 유통에 앞서 정확한 진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