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분비학 선구자 김동수 박사 별세
핵의학 이용한 내분비학 초석 다져
노년에는 통일·시민운동에도 기여
우리나라에서 핵의학과 내분비학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시민운동 원로로 활약한 김동수 박사가 28일 별세했다. 향년 98세.
고인은 한국전쟁 참화 속에서 자유를 찾아 월남해 부산에 정착했다. 5살 때 앓았던 척추질환 후유증으로 막연하게 꿨던 의사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에 만학도로 들어갔다. 고 장기려(1911~1995) 박사 밑에서 늦깎이 의사의 길을 걸었다.
대학 재학 중인 1961년 대한핵의학회 창립 발기인 7명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1964년에는 소변량이 많아지는 질병인 요붕증을 동반한 쉬한(Sheehan) 증후군 사례를 세계적인 의학저널 <란셋>에 발표했다. 1969년 부산의대 내과학 교실에 전임강사 발령을 받고 동위원소실 실장을 맡았고, 1985년에는 대한핵의학회 2대 이사장을 지냈다.
1992년 퇴직 후 부산에 핵의학장비를 갖춘 내분비 전문 클리닉 '김동수 내과'를 개업했다. 당시 갑상선질환 환자들이 외래 진료실 앞에서 장사진을 이룰 정도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다. 2010년 부산대 제자인 김용기 씨에게 물려줬고, 현재는 '김용기 내과'가 됐다.
노년에는 시민사회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부산에서 최초로 위기상담센터인 '생명의 전화'를 창설하고 2005년에는 부산겨례하나 상임대표를 맡아 북한의 의료 환경을 개선하는 데 일조했다.
제자인 김용기 원장은 “내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하늘 같은 분이었다. 나 자신을 성찰할 수 있게 해 준 거울과 같은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빈소는 부산대병원 특1호실에 마련됐다. 1일 오전 6시 30분 발인을 거쳐 경남 산청 선산에 안장된다.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