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백일홍 편지 / 배재경(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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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분분한 사월 85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환갑을 넘긴 외사촌 형은 고모! 고모!를 부르며 꺼이꺼이 슬프게 운다 아들인 나보다 더 섧게 울어 내가 무안할 정도다 삼일장 봉분을 쌓고자 연분홍 벚꽃 잎이 우수수 날리는 도로를 달려 고향 뒷산, 아부지 옆으로 모셔졌고, 외사촌 형은 어느 사이 준비했는지 백일홍 두 그루를 봉분 앞 좌우에 심었다 우리~고모~ 좋아~하는~ 꽃~인데, 엉엉! 곡을 하며 백일홍을 심는다 우리 가족사를 모르는 분들이라면 외사촌 형이 부모상을 당한 자식 같다 나는 왜 눈물이 안 나는 것일까, 사촌 형의 곡소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나는 형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기 바빴다 상주가 뒤바뀐 듯하다 그런 사촌 형은 이태 뒤 홀연히 어머니를 보러 떠났다. 형이 음주를 한 건지는 알지 못했고 10여 년 한몸으로 살아온 1톤 트럭은 부서진 몸 안에 형을 가두고 놓아주지 않았다 자신을 망가뜨린 주인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앙다문 포터의 문짝을 떼어내느라 긴급출동요원들이 애를 먹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어머니 묘의 왼편 백일홍이 서서히 말라가더니 1년 만에 형을 따라갔다

(하략)

- 웹진 문예지 〈시산맥〉 2022 가을호 중에서


85년을 살다 가신 어머니의 장례에 외사촌 형이 와서 아들인 나보다 더 섧게 운다. 그리고 봉분의 좌우에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백일홍 두 그루를 심는다. ‘나는 왜 눈물이 안 나는 것일까’ 시인은 오히려 외사촌 형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태 뒤 그 형도 사고로 죽었고 형이 심은 백일홍도 말라 죽었다. 어릴 때 해외로 입양 갔다 30년 만에 무연고 묘지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왔는데, 아버지, 라고 부르자 썩은 나무 푯말이 가루가 되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간과 사물은 그렇게도 연대하는 것일까. 시인의 이야기 시는 이렇게 독자의 마음을 이끈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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