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푸른 태평양 대륙
논설위원
우리가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과 친숙해진 건 참치 때문이다. 1958년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이 부산항 제1부두를 출항해 남태평양 사모아 파고파고항에 닻을 내리면서 우리 원양어업 역사가 시작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부를 건져 오라’는 의미를 담아 직접 ‘지남호(指南號)’라 명명할 정도로 원양 개척은 전후 우리에게 사활을 건 도전이었다. 1960~70년대 원양어선이 벌어들인 외화는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참치 배에 올랐다 이런저런 사고로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선원도 많았다. 사모아, 피지 등에는 한국 선원 무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태평양 도서국(태도국)으로 통칭되는 14개 섬나라는 파푸아뉴기니, 피지, 솔로몬군도를 제외하면 인구 1000명~25만 명의 소국들이다. 식량과 에너지 위기로 국제 원조에 많이 의존한다. 특히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가 물에 잠겨 세계지도에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무장관이 무릎 깊이 바닷물 속에서 정장 차림으로 수중 연설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이곳도 한때는 육지였다’로 시작되는 이 연설은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최근 이들 섬나라에 관심이 쏠린 것은 전략적 입지와 해양 자원 때문이다. 도서국들의 크기는 작지만 배타적경제수역을 합한 해양 영토는 4000만㎢에 이른다. 지구의 20%로 중국, 미국, 유럽 대륙을 합한 것보다 크다. 세계 참치 어획량의 70%를 차지하고 바다의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망간단괴 등 해양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해상 통로라는 지정학적 가치까지 부각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푸른 태평양 대륙’이라 불리며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29~30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가 열린 것도 이런 세계정세의 연장선이다.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우리는 태도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공적개발원조도 확대하기로 했다. 부산으로서는 2030엑스포 지지가 발등의 불이다. 14개국 중 11개국이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이다. 가입 신청한 파푸아뉴기니를 합하면 12개국이다. 마침 도서국 정상들이 30일 부산을 찾았다. 엑스포 무대가 될 북항에서 이들 태도국과 원양어업으로 맺은 인연이 부산엑스포 역사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