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끔찍한 살인 범죄로 이어진 은둔형 외톨이 문제
피의자 정유정 고교 졸업 후 고립 생활
망상의 범죄 표출 막을 예방 대책 필요
지난달 26일 부산에서 발생한 ‘20대 또래 여성 살해 사건’은 범행 동기나 수법 등에서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피의자 정유정은 사람을 죽여 보고 싶어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정유정은 인터넷 범죄 수사 프로그램을 통해 범죄에 대한 호기심을 장기간 키워 왔다. 살인 욕구 때문에 계획적으로 범죄를 준비하고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해 유기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경찰은 범죄의 중대성과 잔혹성을 감안해 신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신상 공개로 끝날 일이 아니다. 누구든 잔혹한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건은 기존 잔혹 범죄와는 또 다른 특징 때문에 범죄심리학적으로도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범행의 잔혹성과 공감 능력 부재 등에서 사이코패스 범죄라는 지적이 있지만 동기나 범행 후 피의자 행동이 전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이코패스 범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범행을 저지르고도 가벼운 발걸음의 태연한 모습이나 시신 처리가 허술하다는 점에서 경계성성격장애 진단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유정이 고등학교 졸업 후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랜 사회적 고립이 범죄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등장해 주목된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끔직한 살인 사건의 배경이 됐다는 이야기다.
정유정의 휴대전화 속에는 단 한 명의 친구 이름도 통화 내역도 없었다. 철저하게 사회와 단절된 은둔형 외톨이었던 것이다. 이번 사건이 단순한 사이코패스 범죄가 아니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살인 사건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히키코모리 살인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이미 2010년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피의자도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 준비를 했지만 특별한 직업 없이 5년간 무직으로 지냈다. 그러다 보니 자신만의 관심 분야인 범죄물에 빠져 상상 속에서 수없이 많은 범행을 저지르고 그 상상을 현실에서 실행했을 수 있다. 은둔형 외톨이 생활이 사이코패스 성향을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개인적 문제를 넘어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다. 코로나19 기간 우리나라 고립청년이 60% 급증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심각하다. 이들에 대한 일상 복귀 노력이 복지나 경제적 측면을 넘어 반사회적 범죄 예방을 위해서도 시급한 일이 됐다. 물론 외톨이 문제를 무조건 강력 범죄와 결부시켜 낙인찍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유정 사건에서 보듯 사회적 유대가 무너져 소통의 기회가 줄면 잘못된 망상을 바로잡을 기회도 사라진다. 고립으로 인한 망상이 끔찍한 사회 문제로 표출되지 않도록 예방 대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