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섬유로 대자연을 쌓아 올리다
갤러리이배 전시 유명균 작가
부산 출신, 거친 자연에서 영감
세 종류 섬유에 흙·종이 섞어
‘숲의 역사’ 표현한 작업 선보여
노랗고 붉고 푸르고, 거친 흙이나 복잡하게 얽힌 덩굴을 보는 것 같다.
대자연의 형상, 존재 방식을 표현하는 유명균 작가. 독특한 질감을 가진 유 작가의 작품은 부산 수영구 갤러리이배에서 만날 수 있다. 오는 17일까지 열리는 유명균·금민정 2인전 ‘인 더 로 오브 네이처(In the Law of Nature)’ 전시 현장에서 유 작가를 만나 작품 이야기를 들어봤다. 1962년생인 유 작가는 부산대 미술교육학과와 일본 다마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우거진 숲처럼 보이는 작품의 시작은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조지아주 남부 농장에 잠깐 머물렀을 때였죠. 덩굴이 많고 모스(이끼)가 가득한 숲에 갔는데 겁이 나더군요. 빨리 지나가려 하는데 내가 공중에서 유영하는 느낌이 들었죠. 돌이 하나도 없는, 먼지 같은 흙이 쌓인 숲이었던 거죠.”
그곳에서 유 작가는 ‘모든 생물체가 언젠가 재가 된다’는 것을 떠올렸다. 유 작가는 흙을 조금 채취했다. 때마침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해 미국 전역을 떠돌며 지내던 때라 가는 곳마다 다양한 흙을 수집할 수 있었다. 창작촌 등을 이동하는 중간에는 국립공원에서 캠핑을 했다.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은 작가에게 작업 동력이 됐다.
사막 같은 땅과 바위 산. 유 작가는 대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색깔이 예쁘고 화려한 꽃을 실제로 만져 보면 송곳과 같아요. 척박한 자연 환경에서 살아가는 식물 등을 보면서 나도 생명체라는 것을 깨닫고,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순환, 종의 역사에 대해 생각했죠.” 작가는 이를 ‘사회화의 역행’이라고 불렀다. “자연 속에서 인간을 만나게 된 것이죠.”
대자연을 풀어내는 작업에 작가는 세 종류의 섬유를 사용한다. “야자수 섬유와 마, 그리고 배의 로프 등에 사용하는 마닐라 섬유를 주로 써요.” 캔버스에 종이나 천, 도자기 흙과 섬유 조직을 쌓아서 층을 만든다. “풀을 입힌 것처럼 탄탄하게 만든 섬유를 찢어서 사용하죠.”
거대한 자연의 숲을 연상시키는 ‘더 히스토리 오브 포레스트’ 시리즈는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 섬유의 결이 두드러지는 노란색은 잡초 더미처럼 보이고, 푸른색은 열대 밀림의 숲, 붉은 색은 원시적인 숲을 연상시킨다.
미국에서 흙이나 광물의 색을 표현했다면 2020년 이후 한국에서의 작업에는 강렬한 색이 두드러진다. “재료가 바뀐 영향인데, 환경에 의해 새로운 발견을 한 것이죠.” 유 작가는 현재 울산 울주군 삼동면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섬유가 신경조직과 같은 모습으로 얽혀서 나오는 작업을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캔버스 위치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굴삭기를 사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