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돌려차기 사건’은 왜 요란해졌나
변은샘 기획취재부
폭행 충격 기억 잃은 피해자
언론·SNS 통해 적극 알리고
소송 나서며 세간 이목 집중
억울함 못 풀고 법망서 소외
현행 사법 시스템 실패 방증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요란하다. 성범죄, 살인, 폭행 등 각종 강력 범죄 사건이 매일 쏟아지는 가운데 사람들의 관심이 유독 몰리고 있다. 이례적으로 범죄 피해자가 전면에 나선 영향이다.
처음부터 요란했던 건 아니다. 사건은 1년 전 5월 〈부산일보〉에서 처음 보도됐다. 기사를 접한 피해자 박민지(28·가명) 씨가 기자에게 연락해 왔다. 가해자 신상과 사건의 전말을 물었다.
그는 폭행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경찰은 수사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민지 씨는 가해자 검거부터 진술, 송치,기소의 전 과정을 경찰이 아닌 본보의 지속적 보도를 통해 파악했다.
민지 씨는 이때부터 요란해지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최초 대응자인 경찰을 만났으나 사건의 실마리는 수사 당국이 아닌 언론을 통해 얻을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가만히 있으면 사법제도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 뒤에 그는 다른 선택지를 찾았다.
민지 씨는 언론, SNS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여론의 주목을 빌렸다. 사건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력을 갖기 위해 민사소송을 찾았다. 피해자가 법정에서 가해자에 대한 일말의 정보라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1년간 요란하게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지난달 31일, 수많은 카메라와 방청객 속에서 가해자의 성범죄 혐의가 처음 드러났다. 의연하게 사법절차의 한계를 지적하던 민지 씨는 항소심 재판정에서 처음으로 오열했다.
모든 범죄가 이처럼 요란할 수는 없다. 범죄 피해자가 모두 민지 씨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폭력의 경험을 증언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다.
‘제3자가 된 피해자’ 기획이 보도되자 한 범죄 피해자가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그는 약속을 잡았다가 미루기를 반복한 끝에 결국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억울한 게 있어서 언론의 힘을 빌리려 했지만, 그에게는 억울한 심정보다 증언의 고통이 더 컸다.
민지 씨처럼 피해자가 경험을 적극적으로 증언하려면 큰 각오가 필요하다. 보복 위협을 감수하고, 사건이 발생한 그날에 긴 시간 동안 갇혀 살아야 한다.
사법 시스템은 그런 범죄 피해자의 억울함을 대신 증언해 주겠다고 마련된 공식 절차다. 적극적으로 억울한 것을 밝히고 그에 걸맞은 처벌을 통해 사건이 일어나기 전 있던 자리로 피해자를 되돌려 놓는 역할이다. 국가가 피해자의 억울함을 지지한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민지 씨가 겪은 법 안에서 피해자는 소외돼 있었다. 요란해져야만 했다.
요란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그러므로 현 사법 시스템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증언하는 데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경찰을 닦달하며 언론의 확성기를 통하거나 개인정보가 드러나는 민사소송을 걸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피해자의 편에 서주는 사법 시스템이 필요하다. 모든 피해자가 요란하지 않을 수 있도록, 피해자의 억울함을 요란하게 알아주는 사법 시스템이 마련될 때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