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태현 경남 진주 순실크 대표 “실크산업,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변화·혁신에 도전해야”
실크 기업 2세 경영인 동참 강조
가방·마스크 개발 등 영역 넓혀
‘신선한 시도’ 재부흥 선도 기대
“비록 실크산업이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실크의 가치는 여전히 높습니다. 혁신을 이룬다면 부흥을 이룰 것이라 확신합니다.”
진주실크는 1990년대까지 경남 진주시의 지역 경제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크의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호황기를 누렸고 ‘진주 뉴똥’이라는 실크 대표 브랜드까지 만들어졌다.
1980년대 진주시 지역 제조업체는 500여 곳이었는데 이 가운데 실크 관련 업체가 130여 개에 달했다. 지역 총생산의 20%, 지역 제조업의 33%, 지역 수출의 39%를 책임질 정도로 지역의 주력 산업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진주실크는 빠르게 침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대다수 기업가들이 시설 투자와 연구 개발 등에 소홀했고 시대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130여 곳에 달했던 실크업체는 현재 33곳에 불과하다.
박태현(55) 진주 순실크 대표는 2세 경영인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30년 가까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실크산업의 화려했던 시절을 눈으로 직접 봤기에 그만큼 아쉬움도 크다.
“가장 잘 나갈 때 지역 업체들이 미리 준비를 했다면 실크산업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겁니다. 어쩌면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진주에서 활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실크 소재가 좋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맞추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변화와 도전을 해야 합니다.”
박 대표가 생각하는 실크산업은 혁신에서부터 비롯된다. 한때 대표적인 실크 제품이었던 넥타이와 스카프의 소비량이 급감하면서 업계에서는 실크산업이 끝났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박 대표는 눈을 돌려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실크의 은은함을 강조한 무드등을 비롯해 가방과 핸드폰 케이스 등을 개발했다. 여기에 BTS 한복 정장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리을과 협업해 한복의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는 재활용이 가능한 실크 마스크를 개발해 전국 곳곳에 납품하고, 진주 대표 캐릭터 ‘하모’가 인기를 끌자 하모 전용 실크 의복을 만들기도 했다. 실크 제품 역시 유행을 선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실크는 한복과 넥타이, 스카프만의 소재’라는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크 원단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많아요. 그동안 몰랐고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에요.”
박 대표가 실크산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 단순히 향토산업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만큼 실크가 가진 장점이 무궁무진하다고 믿고 있다.
실크는 합성이 아닌 천연 섬유로 피부에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는다. 여기에 단백질로 이뤄져 있어 건강·의료·공업 등 생활 자재로의 활용도 가능하다.
실제 박 대표는 현재 실크와 첨단산업의 융복합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중기청 산학연 컬래버 사업에 선정돼 반고체 배터리 제작을 위한 세라믹 섬유 제직 개발에 참여한 상태다. 과거의 산물인 실크도 미래 동력 산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실크 원료에서 추출한 양질의 단백질을 커피 원두에 입힌 실크커피도 개발했다. 여기에 더 나은 맛을 찾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고, 마침내 지난해 ‘진주 실크커피 뉴똥’이라는 커피 브랜드를 만들었다.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박 대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실크가 일상생활에 깃들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혁신에 동참하고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있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 뭔가 성공했다는 말을 하긴 이른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러한 신선한 시도들이 실크산업에 새로운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 실크산업에도 2세 경영인들이 하나 둘 늘고 있습니다. 함께 힘을 합쳐 실크산업의 부흥기를 이루길 기대합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