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여름 가고 여름 / 채인숙(1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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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략)

어제는 이웃집 마당에서 어른 키만 한 도마뱀이 발견되었다

근처 라구난 동물원에서 탈출했을 거라고

동네 수의사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밀림을 헤쳐 만든 도시에는

식은 국수 면발 같은 빗줄기가 끈적하게 덮쳤다

밤에는 커다란 시체꽃이 입을 벌리고

도마뱀의 머리통을 천천히 집어삼키는 꿈을 꾸었다

사람들은 어떤 죽음을 목도한 후에 비로소 어른이 되지만

삶이 아무런 감동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에

번번이 놀란다

납작하게 익어가는 열매를 따먹으며

우리는 이 도시에서 함께 늙어갈 것이다

꽃은 제 심장을 어디에 감추어 두고 지려나

여름 가고 여름 온다

- 시집 〈여름 가고 여름〉(2023) 중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섬으로 이주한 시인은 ‘삶이 아무런 감동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에 번번이’ 놀라워 하지만 ‘납작하게 익어가는 열매를 따 먹으며’ 이 도시에서 함께 늙어갈 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 시에서 필자는 ‘함께’라는 연대의 말에 한참 머물렀다. 전형적인 열대 기후에다 정글을 헤쳐 만든 자카르타, 라는 도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심장을 시에 감추어 두고 산다. 그 마음은 어떤 아름다움일까. 먼 이국이나 모국이나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하고 ‘이웃집 마당에 큰 도마뱀’이 나타나는 일이 발생되더라도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 한국도 점점 더워져 벌써 여름이 오고 있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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