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굶주린 채 세상 뜬 가을이… 친모·동거녀 서로 ‘네 탓’만
친모 “동거녀가 딸 입원 치료 막아”
구타·협박에 성매매 지속 주장도
동거녀,친모 정서 문제 부각 시도
보호자 학대 속 가을이는 피골상접
사탕· 흙 묻은 당근 먹었다고 혼나
아이 죽음 내몬 양측 법정 공방만
가스라이팅을 통한 성매매 강요가 4세 여아의 사망(부산일보 3월 30일 자 8면 등 보도)으로 이어진 ‘가을이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가을이(가명)가 겪었던 고통의 시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아의 죽음을 두고 아이를 때린 친모와 성매매를 강요한 동거녀 사이의 공허한 책임 공방도 가열되는 양상이다.
■사탕 몰래 먹다 혼난 가을이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태업)는 지난달 30일 동거녀(성매매 강요, 아동학대 살해 방조 등)와 동거녀의 남편(상습아동유기·방임 방조)의 공판에서 가을이의 친모 A 씨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했다. A 씨는 가을이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동거녀 B 씨는 가을이 모녀에게 거처를 마련해 준 대신, A 씨에게 2400여 회의 성매매를 강요하고 1억 2000여 만 원의 성매매 대금 전부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의 증언과 심문 내용을 종합해 보면, 가을이는 2021년 초부터 지난해 12월 숨질 때까지 몇 차례 병원 통원 치료를 제외하곤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사망 5일 전 A 씨와 B 씨 가족이 함께 외식을 갔지만, 그때도 가을이는 혼자 집에 있었다. 가을이가 시력 악화와 더딘 발육 상태로 병원으로부터 입원 치료를 권유받았지만, A 씨는 통원 치료만 몇 차례 진행했다. 이에 대해 A 씨는 “B 씨가 가을이가 외부에 노출되는 걸 싫어했다”며 “너는 돈 벌어야 하니까 (입원 치료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고 주장했다.
2020년 겨울부터 A 씨는 성매매를 시작했고,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4~5시까지 일을 했다. 이에 가을이도 낮밤이 바뀌었고 잠도 친모가 아닌 B 씨와 잤다. B 씨 변호인 측은 “B 씨가 가을이를 더 챙겨준 것 아니냐”는 식으로 물었고, A 씨는 “가을이는 B 씨를 무서워했다. B 씨가 아이의 독립성을 키워야 한다며 따로 잘 것을 요구했다”는 식으로 답했다.
가을이의 굶주림을 짐작케 하는 장면들도 거론됐다. 가을이는 B 씨가 사둔 사탕 20개, 흙이 묻은 당근과 감자, 어른들이 먹다 남긴 아귀찜 등을 몰래 먹어 어른들에게 크게 혼이 났다. 심각한 성장 부진을 겪던 가을이는 사망 당시엔 만 4세 나이에도 몸무게가 10kg 남짓이었다.
■아이는 떠나고, 책임 공방만 남아
성매매 강요 과정에 대한 검증도 이뤄졌다. 동거 초기 A 씨는 대부업체와 대포폰 등으로 400여 만 원을 대출했다. 이에 대해 A 씨는 동거녀인 B 씨가 생활비 충당을 위해 대출을 요구해 전달했고, 이후엔 오히려 그 빚을 갚아야 한다며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성매매 시작 후 3~4개월 뒤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B 씨가 타 지역에 있는 가족에게 성매매 사실을 알리겠다는 식의 협박을 했다고 증언했다. 또 A 씨는 B 씨 지인을 지목하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B 씨 지인으로부터 몇 차례 구타와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억대의 성매매 대금을 모두 B 씨에게 전달한 것에 대해 검찰은 “딸과 둘이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인데 왜 그러지 않았냐?”고 질의했고, A 씨는 “모든 걸 B 씨가 관리했고, 협박을 너무 심하게 당해 그럴 생각조차 못 했다”고 답했다.
또 B 씨 측은 가을이 사망 직전 A 씨가 왜 119에 신고하지 않았냐고 물었는데, A 씨는 “B 씨 부부에게 119에 신고해 달라고 했는데 해주지 않았다. (수개월 전 휴대전화가 고장 나고 수리 비용이 없어) 난 핸드폰이 없었다”고 답했다.
이날 B 씨 측은 A 씨의 정서적 문제 등을 부각시키려 A 씨를 몰아세우다, 재판부의 지적을 받았다. 반면 A 씨는 가을이가 숨지던 날 B 씨의 폭행도 있었다고 주장하는 등 증언이 혼란스러워, 재판부가 “반성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결국 재판부는 공판 말미 “가을이는 피골이 상접해서 죽었다. 이상하지 않냐”며 가을이를 죽음으로 내몬 어른들의 무감각과 잔인함을 이해할 수 없음을 내비쳤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