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정신 상징’ 요산 김정한 생가 복원 20돌 맞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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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건축 과정, 회고담, 공연 등 잔치
행사 앞서 ‘요산 문학지도’ 세미나 개최

요산 김정한 생가.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 제공 요산 김정한 생가.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 제공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이사장 조갑상)는 10일 오후 5시 부산 금정구 남산동 요산김정한문학관에서 생가 복원 20주년 잔치를 연다. 생가는 요산의 육신적·정신적 성장이 깃든 장소로, 문학전시관과 함께 요산 문학정신의 상징이다.

1996년 요산 타계 이후 생가 복원 문제가 본격 제기된 것은 그 이듬해였다. 생가 복원까지 6년이 걸렸는데 가장 큰 고비는 IMF 경제위기였다. 전례 없던 혹독한 환난으로 3년 시간을 흘려보내고서 2000년 ‘요산김정한선생 생가복원 및 기념관건립 추진위’가 결성돼 그야말로 ‘범시민적으로’ 생가 복원이 추진됐다. 문학계뿐만 아니라 당시 변호사 조성래·문재인(전 대통령), 부산예총회장 최상윤, 민족미학연구소장 채희완 등까지 참여했다.

복원 전 요산 김정한 생가 모습.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 제공 복원 전 요산 김정한 생가 모습.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 제공

2002년에는 ‘준비단체’인 추진위가 ‘실행단체’인 사단법인으로 격상하면서 ‘요산기념사업회’(현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로 이름을 바꾸고 생가 복원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초대 이사장으로 내정된 소설가 윤정규가 아쉽고도 갑작스럽게 타계해 기념사업회 출범이 4개월여 늦춰지는 뜻밖의 변수도 있었다.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은 평론가 김중하가 맡아 2003년 6월 드디어 생가가 복원됐다. 요산 생가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복원한 문학인 생가였다. 전국적으로도 드물었다.

2006년 생가 바로 옆에 요산김정한문학관이 개관했는데 전국에서 생가와 문학전시관을 함께 갖춘 흔치 않은 귀한 예에 속한다. 황국명 요산김정한문학관 관장은 “요산이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생가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목조기와집으로 복원돼 유품을 전시하며 시민들에게 개방돼 있다”며 “약자의 아픔을 보듬고 부자유한 인간의 해방을 염원한 선생의 문학정신을 상징하고 있다”고 했다.

2003년 6월 요산 김정한 생가 복원 잔치.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 제공 2003년 6월 요산 김정한 생가 복원 잔치.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 제공

10일 20돌 잔치는 여는 공연, 기념사업회 초기 상임이사였던 신태범 소설가의 생가 건축 과정에 대한 이야기, 요산을 기억하는 김성종 소설가와 이진두 언론인 등의 ‘요산과 나’ 회고담, 요산 넷째 따님의 ‘나의 아버지’ 회고, 요산김정한문학관에 기부를 했던 문정현 서봉리사이클링 회장에 대한 감사패 증정, 닫는 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이날 잔치에 앞서 오후 3시 문학관 강당에서 요산문화연구소 주관으로 ‘요산 문학지도: 김정한의 문학지도에서 사람살이를 읽다’ 세미나가 진행된다. 이 세미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3년 한국작고문인 선양사업’ 공모에 선정돼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가 연말까지 진행 중인 사업의 일부로 열리는 것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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