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5㎞ 수영으로 주파… 장애 초등생의 ‘값진 동메달’
자폐 장애 보림초등 조재민 군
첫 출전 전국장애학생체전서
자유형·평영 100m 각 3위
2019년부터 서부산센터 연습
“동작 날렵 물 무서워하지 않아”
선수 성장 위한 정책 지원 절실
“지금 별명은 조동동(銅銅)인데, 앞으론 조금은(金銀) 돼야죠.”
지난 1일 부산 사하구 서부산권장애인스포츠센터에서 만난 보림초등 6학년 조재민(12) 군은 목에 동메달 2개를 걸고 수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조 군은 지난달 19일 울산에서 열린 제17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수영 남자 초등부 자유형 100m와 평영 100m에서 각각 3위를 차지했다. 목에 건 2개의 동메달 덕에 재민이는 요즘 집에서 ‘조동동’으로 불린다. 더 높은 메달을 따게 되면 ‘조금은’으로 불릴지도 모르겠다며 엄마 이소연(46) 씨는 웃었다.
이번 대회는 재민이의 첫 전국대회였으면서 서부산권장애인스포츠센터 개소 이래 센터 출신 선수의 첫 성과였다. 그동안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스포츠센터는 해운대구 한마음스포츠센터, 부산진구 부산곰두리스포츠센터 등 다른 지역에만 있었다. 사설 스포츠센터가 있지만 비싼 수업료가 늘 부담이었다. 어머니 이 씨는 서부산에 장애인스포츠센터가 들어선 덕에 재민이가 수영을 접하게 돼 늘 감사한 마음이다.
재민이네 모자가 2019년 스포츠센터 개소를 앞두고 강서구 명지동의 발달센터에 가기 위해 을숙도 앞을 지나던 게 시작이었다. 조 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지적장애 3급 판정을, 이어 5학년 때는 자폐성 장애를 진단받았다. 센터가 지어지는 모습을 보고 견학한 재민이는 어느 날 엄마에게 “나도 수영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태어나고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심지어 평소 말수도 적던 아들에게서 처음 들은 이 씨는 강습 신청날 오전 4시에 줄을 서서 등록했다.
처음 한 달은 엄마와 함께 수영장 물에 몸을 담그는 연습만 했다. 재민이에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큰 도전이기 때문이었다. 몸을 물에 담그는 게 익숙해지자 발차기와 호흡을 1년 동안 연습했다. 본격적인 영법 연습에 들어갈 때쯤 코로나19로 센터가 문을 닫았다.
2021년 4월 2년 만에 센터가 문을 열자 재민이는 본격적인 수영 연습에 돌입했다. 그해 가을 박성현(40) 교육주임의 눈에 띄어 선수반에 들었다. 주중엔 매일 스포츠센터를 찾는 조 군은 요즘 하루에 2.5km를 수영으로 주파한다. 박 주임은 “몸이 유연해 동작이 날렵하고 물을 무서워하지 않아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연습 과정에서 때로는 어설픈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수영장 레인 끝에서 몸을 돌려 발로 수영장 벽을 박차고 반대 방향으로 추진하는 기술인 플립턴을 가르칠 때였다. 박 주임이 ‘몇 번 플립턴을 하고 멈추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안 했더니 재민이는 무한정 플립턴을 하며 레인을 계속해서 돌았다. 그 이후로 박 주임은 재민이가 멈춰야 할 시점을 알려줄 땐 멈춰도 된다는 손짓을 한다.
물에 뛰어드는 스타트 다이빙도 과제다. 박 주임이 재민이를 품에 안고 함께 물에 뛰어들어 보기도 했지만, 물속에 갑자기 풍덩 빠지는 다이빙이 재민이에겐 여전히 부담스럽다. 대회에선 다이빙 대신 물속에서 출발했는데, 다이빙을 하면 기록을 3~4초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박 주임은 본다.
박 주임은 “나는 수영 눈높이가 높은 편이다. 재민이는 생각했던 만큼 성장을 해줬다”며 “장애인 시합이 더욱 많아져 재민이가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년 전 유명했던 자폐 수영선수 김진호 이후 여러 이유로 장애인 수영이 사실상 절단됐다”며 "서부산권장애인스포츠센터의 장애인 프로그램은 사하구청의 재정적 지원을 통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아가 국민체육센터를 장애인에게도 개방하는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지면, 장애인 수영의 저변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키가 1cm 컸다는 재민이는 내년 중학교에 간다. 새롭게 펼쳐질 환경에 얼마나 적응할지 관건이다. 올해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수개월 뒤 닥칠 일상의 변화를 생각하면 수영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엄마 이 씨는 “중학교에 가면 또 어떨지 모른다”면서도 “그래도 가능하면 앞으로도 수영을 했으면 좋겠다. 재민아, 우리 대회 참가하러 외국에도 가 봐야지!”라며 힘찬 표정을 지었다.
글·사진=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