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에게 새 도로는 ‘그림의 떡’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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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과 협의 없이 도로 신설
10분 거리가 35분으로 늘어나
암석 노출로 사고 위험도 커
재개발조합 “추후 협의할 것”

지난 7일 부산 남구 든솔직업재활센터 일대 신설 도로 옆에 깨진 암석이 노출돼 있다. 지난 7일 부산 남구 든솔직업재활센터 일대 신설 도로 옆에 깨진 암석이 노출돼 있다.

지난 7일 오전 11시께 부산 남구 우암동의 발달장애인 재활시설인 든솔직업재활센터 일대. 공사로 인한 기존 도로 폐쇄를 알리는 현수막이 마당 앞을 가로질렀다. 신설 진입로로 돌아가자 2차로가 나왔다. 보도블럭이 깔린 인도 대신 노란 선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구분해 놓은 게 전부다. 하지만 그마저도 정차된 화물 트럭에 의해 막혀 있었다. 도로 옆은 발파한 돌이 그대로 노출된 공사 현장이었다. 아들이 센터에 다닌다는 박선희(62) 씨는 “장애를 가진 아들이 이 길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어서 다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재개발 공사로 기존 도로가 사라지면서 인근 장애인 시설에서 구청·보건소·시장 등에 가는 시간이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신설도로 사전협의 과정에서 시설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탓에 시설을 이용 중인 중증 발달장애인들이 불편과 사고 위험을 떠안게 됐다.

8일 남구청에 따르면 지난달 3일 든솔직업재활센터와 못골역을 잇는 기존 도로가 폐쇄되고 신설 도로가 개통됐다. 기존 도로는 620m로, 시설 이용자들이 못골역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이었다. 반면 760m에 이르는 신설 도로는 도로 방향이 기존과 달라 지게골역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시설을 이용 중인 25명에 달하는 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역이 못골역이라는 데 있다. 못골역은 구청·보건소·시장이 밀집해 있어 건강 검진이나 복지 지원 신청을 하려는 시설 이용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하지만 당초 10분 정도 소요됐던 거리는 도로 신설 이후 35분이나 늘어났다. 지게골역까지 돌아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탓에 못골역까지 3배 이상의 시간이 더 걸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신설 도로엔 인도도 마련돼 있지 않고 발파한 돌이 그대로 방치되면서 시설을 이용 중인 장애인 상당수가 사고 위험에도 노출된 상황이다. 이에 손미옥(55) 씨는 지난달 내내 구청 인근서 1인 시위를 펼쳤다. 손 씨는 "센터에 다니기 위해 인근 아파트로 이사까지 왔는데 기존 도로가 막힌데다 새 도로는 위험해 자녀를 센터까지 직접 데려다 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이 같은 상황이 빚어진 데는 재개발을 위한 신설도로 개설 전 조합이 센터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은 탓이 주원인으로 분석된다. 부산 남구 대연동 대연3구역 일대는 오는 7월 말 분양을 앞둔 재개발 지역으로, 대연동 1619번지 일원 25만 2665㎡ 부지에 4488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든솔직업재활센터 이미점 사무국장은 “공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고 기존 도로가 폐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방적인 통보 방식이 아닌 사전협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연3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측은 센터는 우암 2구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동의를 받아야 하는 구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입장이다. 센터 바로 밑에 위치한 인근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교육청으로부터 공문을 받고 동의를 구한 바 있다. 조합 관계자는 "추후 문제 해결을 위해서 센터와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고 밝혔다.

글·사진=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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