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은 주변인 아닌 공동정범”… 가을이 죽음 ‘책임 추궁’ 요구 거세
아이 죽음 원인 제공·직접 학대 의혹
관련법 상 학대 책임자 규정 모호
친모 증언에 지나치게 의존 ‘한계’
시민단체, 동거인 엄중 처벌 요구
성매매 강요가 4세 여아의 죽음으로 이어진 ‘가을이(가명) 사건’(부산일보 3월 30일 자 8면 등 보도)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비극을 초래한 가을이 주변 어른들에 대한 공분이 커지고 있다. 가을이가 장시간 학대 탓에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됐지만, 관련자들은 제한된 수준에서만 법적 책임을 추궁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가을이 친모 A 씨는 아동학대 살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반면 A 씨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던 동거녀 B 씨는 아동학대·살해 방조, 아동복지법 위반(상습아동유기·방임) 방조, 성매매 강요 혐의로 기소됐다. 같이 생활하던 B 씨의 남편도 아동복지법 위반(상습아동유기·방임) 방조 혐의만 받고 있다. 아동학대와 관련해 친모는 아동학대의 주범이고, B 씨 등은 A 씨의 행위를 말리지 않은 일종의 주변인으로 취급된 상황이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가을이 모녀의 당시 하루 일과 등을 고려하면 가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양육 과정에서 B 씨의 책임은 단순한 동거인 수준을 넘어선다. 친모 A 씨는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성매매를 하고 아침엔 주로 취침한 만큼 가을이는 주로 집에 있었던 B 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을이는 B 씨와 같이 잤다. A 씨는 “B 씨가 엄마는 일을 가야 하니 떨어져서 자야 한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또 동거인 B 씨가 성매매 대금을 모두 가져가 가을이 모녀의 경제권은 B 씨에게 종속된 상태였다. 수사 결과 B 씨의 강요와 협박으로 친모가 성매매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는데, A 씨가 성매매 탓에 정서적으로 피폐해진 것을 고려하면 B 씨는 아동학대의 실질적 원인 제공자라고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을이는 지난해 12월 폭행으로 숨졌지만, 이미 심각한 영양부족으로 죽음으로 내몰렸던 만큼 양육 과정이 ‘느린 살인’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B 씨가 직접 학대 행위를 했다는 의혹도 최근 제기돼 책임 추궁 여론은 더 거세지고 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이에 대해 “주범은 B 씨로 보인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B 씨의 아동학대 책임은 수사기관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학대 피해자인 가을이가 없는 상황에선 친모 A 씨의 증언이 결정적이었지만, 수사 초기 B 씨에게 정신적 의존성을 보였던 A 씨는 “B 씨는 아이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진술했다. 또 아동학대처벌법에서 학대 책임자는 보호자, 친권자, 후견인 등 다소 애매하게 표현된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들은 본격적으로 가을이 사건에서 학대 책임을 엄중히 추궁하라고 요구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12일 성명서를 내고 '친모 A 씨와 동거인 B 씨를 ‘아동학대 살해의 공동정범’으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협회는 성명서에서 'A 씨가 법정최고형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전제한 뒤 'B 씨는 특례법상 보호자의 지위에 있던 자여서 아동의 잔혹한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끔찍하게도 산 채로 미라가 돼 학대 살해당한 피해 아동의 몸이 증거'라며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1인 시위, 탄원서 제출 등으로 가을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표현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A 씨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은 지난 3월 24일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성매매 강요 사실이 논란이 되는 바람에 연기된 상태다. 13일 다시 A 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진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