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약 성분 든 일본 감기약 전통시장서 불법 판매
국제시장 등서 ‘파브론 골드’ 판매
의식불명 부작용 위험 전문 의약품
1만~2만 원 수준 누구나 쉽게 구입
위법 불구 당국 단속 없이 계도만
보건소 “인력 부족·상인 생계 고려”
마약 성분이 소량 함유돼 의사 처방이 필요한 일본 감기약이 부산 대표 관광지인 부평깡통시장과 국제시장 등에서 무분별하게 불법 판매되고 있다. 단속 주체인 관할 보건소는 해당 사실을 알면서도 적극적 단속보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계도 활동에 그치는 상황이다.
12일 낮 12시께 부산 중구 부평깡통시장. 각양각색의 수입 상품을 파는 가게들 속에 눈을 사로잡는 황금빛 박스에 담긴 감기약이 보인다. 이 감기약은 일본 한 제약사에서 만든 ‘파브론 골드 a’로 1만~2만 원 수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직접 상인에게 부작용 여부나 복용 시 주의사항을 물었지만, 상인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12일 중구보건소와 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중구 부평깡통시장, 국제시장 등 전통 시장 내 점포 곳곳에서 파브론 골드 a 종합감기약이 판매되고 있다. 대다수 판매처는 일반 상점으로 전문 약사가 아닌 상인들이 약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감기약에는 아편에서 추출된다고 알려진 마약 성분 ‘코데인’을 변형한 ‘디히드로코데인’이 8mg 함유돼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디히드로코데인이 포함되면 전문 의약품으로 지정돼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약을 구매할 수 있다. 복용 시 부작용 위험성이 일반 의약품보다 크기 때문이다. 기침이나 가래 등 감기 증상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해당 성분이 중추신경에 작용하는데, 다량 섭취·장기간 복용 등 오남용 시 의식불명에 이를 위험성도 있다는 것이 의약품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약은 일본에서는 일반 의약품으로 돼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문 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
일반 상점에서 이 감기약을 판매하는 것도 위법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디히드로코데인 함유 제품의 경우, 중증의 호흡 억제 위험 증가 등 사용상의 주의가 필요한 의약품”이라며 “해외직구한 의약품을 국내에서 판매·유통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작용 가능성이 높은 의약품이 버젓이 거리에서 유통되고 있지만 관할 보건소는 시장의 역사성 보존이 더 중요하다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오랫동안 전통 시장에서 각종 의약품이 판매됐고, 이에 따른 전국적 인지도를 고려하면 선뜻 단속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구보건소는 전통시장 상인회에 의약품 판매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홍보하는 수준에 그쳤고, 경찰이나 관세청 등 수사 기관과 합동으로 유통 과정까지 단속을 실시한 적도 없었다. 올해 초 마약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파브론 골드 a’의 해외직구 등이 문제가 됐지만, 정작 국내에서 버젓이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 현장은 행정기관의 관심 밖에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부산 재래시장 등에서 ‘파브론 골드 a’를 살 수 있다는 건 구매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중구보건소 관계자는 “수십 년 동안 상인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해오던 일이어서 적극적으로 단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또 보건소에 의약품 단속 담당자도 1명 밖에 없어 대대적인 단속을 하기에는 어려운 여건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정당국의 소극적인 태도는 마약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관광명소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민 안전에는 손을 놨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약사회 변정석 회장은 “특히 일본 감기약 중에는 디히드로코데인이라는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며 “근절을 위한 관계기관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