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곰팡내 수돗물은 ‘예비라인 없는 공사’ 탓
화명정수장 노후 밸브 교체 공사
여과 공정 중단한 상태에서 강행
상수도본부, 문제점 알고도 방치
사고 나자 뒤늦게 라인 신설 계획
속보=부산 수돗물에서 환경부의 감시 기준치를 넘는 냄새 유발물질이 검출된 것은 부산시가 제대로 된 대책도 준비하지 않고 정수장 보수공사를 강행한 것이 원인으로 드러났다. 특히 부산시상수도사업본부는 수년 전부터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으나,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안이하게 대응한 것으로 확인돼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12일 부산시상수도사업본부(이하 상수도본부)에 따르면, 화명정수장은 지난 8일부터 ‘입상활성탄여과지’ 노후 밸브 교체 공사를 실시했다. 입상활성탄여과지는 물속에 녹아있는 미세한 잔류물을 활성탄을 통해 흡착시켜 제거하는 고도정수처리 공정이다. 통상 이 과정에서 남조류로 인한 냄새 물질 등 불순물이 대부분 걸러진다.
하지만 화명정수장의 경우 ‘입상활성탄여과지’에 예비라인이 없다. 이로 인해 밸브 교체공사를 하려면 이 공정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실제 공사가 시작된 지난 8일 화명정수장에서 생산된 수돗물 18.1만t은 이 공정을 건너뛴 채 공급됐다. 달리 말하면 온전한 정수처리 공정을 거치지 않은 물이 각 가정에 공급된 것이다.
녹조가 발생하는 여름철에 밸브 교체 공사를 진행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인다. 낙동강 하류 물금·매리 취수장 일대에서는 통상 6월부터 녹조가 피기 시작한다. 예비 라인이 갖춰지지 않아 고도정수처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 시기에 공사를 한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상수도본부는 이번 공사에 앞서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화명정수장 생산량을 최소 수준으로 줄인다는 대책을 세웠다. 줄어드는 물량은 덕산정수장의 생산량을 늘려 대체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8일 화명정수장에서 최소 수준으로 생산한 물량인 18.1만t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상수도본부는 이번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화명정수장의 예비라인 부재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명정수장이 워낙 오래 전에 지어진 탓에 공간이 협소해 예비라인을 추가로 확보할 수 없다고 성급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화명정수장은 1975년에 건립됐으며, 입상활성탄여과지 공정은 1994년에 뒤늦게 추가됐다. 상수도본부는 문제가 터지자 비로소 이제라도 예비라인을 신설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부산 환경단체의 비판은 거세다. 환경단체는 이날 오후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를 항의방문했다. 이들은 △수돗물 녹조 악취 진상 규명 △재발 방지대책 마련 △환경부·부산시의 녹조대책 마련 △민관협의회 구성 등을 촉구했다.
상수도본부 관계자는 “예비라인은 보수공사나 교체공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동안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 번번이 해결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문제가 발생한 만큼 예비라인 신설의 방향성을 갖고 용역 등을 진행해 방법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상수도본부는 중단된 노후밸브 교체 공사를 낙동강 녹조 상황이 개선된 뒤 재개할 방침이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