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춤추고 걷고 쉬고, 일상에서 예술로 찾아낸 비일상
국제갤러리 줄리안 오피 개인전
5년 만에 부산 전시 7월 2일까지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에 빠르고 동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고 싶었죠.”
영국 출신 작가 줄리안 오피의 작품은 일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만든다. 회화·조각·모자이크와 VR, 퍼포먼스까지 총 43점의 작품. 부산에서 5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OP.VR@Kukje/F1963.BUSAN’는 작가의 새로운 탐구 결과를 작품으로 확인하는 자리다. 수영구 망미동 F1963에 위치한 국제갤러리 부산점과 바로 옆 석천홀까지 확장한 전시에서는 걷고 춤추고 휴식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춤추는 사람’ 표현 신작과 VR 전시
공감각적 각성 입체적으로 표현해
“익숙하게 세상 이해 습관 탈피해야”
이번 전시의 핵심은 춤추는 사람과 VR 전시이다. “유튜브와 틱톡에서 셔플댄스 영상을 봤어요. 사람들이 2010년대 유행했던 셔플댄스를 직접 추는 모습을 찍어서 올리는 데서 영감을 받았죠. 기존에 탐구해 온 걷는 행위 대신 춤추는 행위를 탐구하자고 생각했어요.”
오피는 프로 댄서로 활동 중인 딸의 도움을 받았다. 틱톡 영상에서 회화로 구현할 수 있는 스텝 5개를 추려냈다. 작가는 음악가에게 부탁해 5개 사운드트랙을 만들었고, 이번 전시장에서는 초당 100비트의 빠른 음악을 사용한다. “색상을 언어로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에, 스키장에서 본 형형색색 옷처럼 각 인물의 옷을 밝은색으로 표현했어요.”
춤추는 사람은 최소한의 요소를 사용해 남녀 구분만 했다. 이집트 상형문자나 고대 중국에서의 표현법을 차용한 것이다. 단순화한 이미지를 통해 관람객은 춤과 속도에 더 집중하게 된다.
LED 영상 작업에 대해 오피는 “60개의 드로잉을 이어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점점 작품을 명확하게 구분·분류하는 것이 어려워져요. 조각은 서 있는 회화 같고, 회화는 벽에 찌부러진 조각 작품과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평면 회화에서도 역동성이나 입체감이 드러나는 이유다.
오피는 “자동차나 기차의 움직임 속에서 세상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공감각적 각성이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거죠. 움직임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봐요.” 오피는 각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나 느낌에 따라 가장 적절한 기술을 가져와서 쓴다고 밝혔다.
모자이크 타일 작품은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의 기술에서 가져왔다. 모자이크는 ‘움직이는 회화’ 작품의 픽셀과도 연결성을 가지며, 하나의 이미지가 현대와 고대 버전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VR 작업은 예술을 더 새롭게 느낄 수 있게 만들기 위한 도전이다. VR 전시는 석천홀 앞뒤 총 4개의 부스에서 체험할 수 있다. 작가는 “기승전결이 명확하기를 바랐다”며 “(VR 전시) 1관은 간결한 이미지로 시작해, 5~6관에 반전 효과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VR 전시의 스토리라인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부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부터 벨기에 행인을 형상화한 평면 작품, 코로나 팬데믹 당시 런던 공원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조각까지.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속 다양한 도시 사람의 모습을 비교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런던 사람들을 표현한 작품은 나선형 계단 손잡이에 쓰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해 부드러운 곡선이 살아있다. 나무 조각은 스튜디오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숨기고 포즈를 취해 달라고 부탁해 찍은 사진 이미지를 옮긴 것이다. 작가는 인체에서 무엇을 표현할까에 따라 재료가 달라진다고 전했다.
오피는 작품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보는 세상 그대로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해석하는 세상을 이해할 뿐이죠. 익숙하게 세상을 이해하는 습관에서 탈피하는 자세를 갖춰야 해요. 일상을 비일상으로 만드는 요소는 곳곳에 숨겨져 있어요. 어깨가 구부러진 모습이나 손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같은 것이죠. 습관적으로 일상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줄리안 오피 부산 개인전은 오는 7월 2일까지 이어진다.
해운대 걷는 사람 담은 ‘워킹 인 부산’
“부산 사람 걷는 모습 릴렉스함 보여”
관람객 직접 참여 퍼포먼스 작품도
“부산 사람들을 보니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걷는 모습에서 릴렉스함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줄리안 오피는 이번 전시에서 부산 행인의 모습을 담은 ‘워킹 인 부산’도 발표했다. 작가는 지난해 사진가를 고용해 해운대 해변에서 사람들을 찍어 달라고 했다. “1시간 동안 찍은 약 1000장의 사진을 런던 스튜디오로 보내주더군요. 거기에 30명 정도의 행인이 찍혀 있었죠.”
오피는 부산 시민 또는 부산을 찾은 방문객의 모습에서 ‘릴렉스한 움직임’과 ‘캐주얼한 의상’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런던은 날씨가 춥고,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성향이 있기에 편한 옷을 선호해요. 서울은 전시가 겨울(2021년 10~11월)에 열려서 무거운 코트를 입은 사람들과 둔탁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죠.”
‘워킹 인 부산’은 퍼포먼스로도 만날 수 있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회화 작품을 배경으로 4대의 러닝머신이 놓여 있고, 그 위를 사람들이 걷는다. 작가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방식에서 가장 멀어진 형태로 작업하고 싶었다고 했다.
“현실 그대로를, 어떤 공정도 거치지 않고 작품이 되게 하고 싶었어요. 최근에는 카메라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소위 ‘인증샷 감상’ 이야기다. “예술가에게 도전적 상황이지만 이를 거부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인증샷을 더 많이 찍게 할까, 누구나 회화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게 해봤어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