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우물에 독을 얼마나 풀면 해롭지 않은가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도호쿠) 태평양 연안에서 진도 9.1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을 감지한 원자로는 자동적으로 멈췄으나, 건물 지하에 있던 변전 설비가 침수되면서 원자로의 노심 냉각장치가 마비됐다. 노심이 녹아내리고, 연료봉이 산화하면서 발생한 수소와 수증기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격납고가 폭발로 이어져 태평양을 포함한 인근 지역이 방사능으로 오염됐다. 결국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능가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됐다.
대재앙에 가까운 자연재해는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침수가 예상되는 지하에 변전소를 설치한 부분과 고비용의 원자로 보존을 위해 해수 투입의 적기를 놓쳐 버린 점에서 도쿄전력회사의 결정적인 인재로 평가된다. 참고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석관을 만들어 원자로가 완전히 봉인된 상태지만, 후쿠시마는 원자로의 노심이 완전히 식지 않아 봉인도 못한 채 아직까지도 소량의 방사성 낙진이 뿜어져 나오고 있으며, 원전의 핵반응이 완전히 정지하기까지는 아직도 20년 정도가 더 걸릴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사고 후 10년이 지난 2021년부터 본격적인 폐로 작업이 시작됐으며,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41년에서 2051년까지는 완료될 것이라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
日 정부 밝힌 이유는 ‘저렴한 비용’
감시·제어해야 할 IAEA마저 허용
핵물리학자로서 개탄 금할 수 없어
2016년 일본 정부는 전문가 회의를 통하여 원자로의 과열로 녹아내린 핵연료를 냉각시키기 위해 투입된 냉각수와 유입된 지하수가 합쳐진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62종의 주요 방사성 핵종을 제거한 후, (1) 해양에 방류할지 (2) 수증기로 증발시킬지 (3) 전기분해를 통해 수소와 산소로 방출시킬지 (4) 지층에 주입할지 (5) 땅에 파묻을지 등 5가지 해법 중 해양에 방류하는 것이 ‘최단 기간에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마침내 2021년 4월 일본 정부는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결정한다. ALPS 처리 후 남아 있는 삼중수소 등 일부 방사성 핵종이 포함된 오염수를 안전기준 이하로 희석시켜서 2051년까지 약 30년에 걸쳐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것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일본은 중의원과 참의원이 만장일치로 소련 정부에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공개 요청을 결의하며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거의 매일 전투기를 출격시켜 대기 중 방사능을 채집했고, 여객과 수화물까지 방사능 검사를 하고, 유럽에서 들여오던 수입 농수산식품에 대한 안전기준을 강화해 체르노빌 인근 동유럽은 물론이고 서유럽까지 총 12개국의 식품 수입을 금지시켰다. 심지어 1993년 러시아가 핵폐기물을 일본 근해에 버리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바다는 방사능 쓰레기장이 아니다”라면서 러시아에 강력 항의하고 “당장 핵폐기물 투기를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대상으로부터 방사능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을 제염작업이라 한다. 제염작업은 일반적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는 방사선원을 찾고 모아서 밀봉하여, 심층 지하와 같이 접근이 불가하고 더 이상 흩어지지 않을 안정적인 장소에 처분하는 작업을 뜻한다. 이는 지구상에 이제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공 방사성 핵종들이 흩어져서 지구 생태계에 어떤 예기치 못한 교란을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방사성 오염수의 해양 방류는 정확히 이에 반하는 것으로, 한 곳에 모아 처분해야 할 방사성폐기물을 인위적으로 흩뜨려 인류 공동의 유일한 터전인 지구 전체를 오염시키는 행위다. 이러한 범인류적 방사능 오염을 감시하고 제어해야 할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나서서 연간 허용치 이하라며 30년 방류를 허용한다니, 핵물리학자로서 할 말을 잃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 및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국제적 공모에 대해 네이처 등 과학 잡지를 통한 고발을 생각했다.
하지만 공분을 기대했던 동료 외국 학자들의 반응은 사실 무척 싸늘한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는 민감하면서도 동해안에 즐비한 한국의 원전들에서도 방사성 오염수가 방류될 수 있다는 걱정은 안 한다니 참으로 의아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만에 하나 현재 양산 단층 인근에 집중적으로 건설돼 있는 고리(신고리), 월성(신월성) 원전 총 16개의 원자로 중 하나라도 잘못되는 경우엔, 그것은 일본열도에 막혀서 멀리 퍼지지도 못하고 동해안에서만 지속적으로 축적될 것이라는 무서운 얘기였다.
작년부터 방류 전 삼중수소 농도를 측정하는 저장소와 해저터널 등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류 시설이 차곡차곡 완공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도 후쿠시마 원전 항만에서 잡힌 물고기들에서는 기준치의 수백 배를 초과하는 방사성 핵종이 검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