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박하경 여행기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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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름휴가 계획을 짜야 할 시기가 됐다. 올여름에는 또 어디로 가야 할까. 어차피 돌아올 건데 사람들은 왜 떠나는 것일까. 마침 최근 방영을 시작한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잔잔하고 덤덤하게 만들어도 괜찮을까?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이나영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는 호평 일색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박하경은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면 당일치기 여행을 떠난다. 길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치며 우리네 인생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사실 일상은 누구에게나 시련의 연속이다. 학부모들로부터 학생들이 왜 교내 게임 대회를 하게 내버려 두느냐고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 학생들은 ‘e스포츠대회’를 왜 선생님까지 막으려고 하느냐고 호소한다. 이렇게 힘들면 하경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의 여행. 걷고, 먹고, 멍때릴 수 있다면”이라고 주문처럼 외친다. 여행은 힘든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하경은 에피소드마다 대전, 해남, 부산, 제주 등을 찾는데 특정한 관광 명소를 부각하지는 않는다.

만두전골집에서 줄 서 기다리는데 주문을 2인분부터 받아 난처해진 장면이 나온다. 그때 한 중년여성이 자기도 혼자라면서 합석을 제안한다. 그렇게 낯선 이와 마주 보고 먹는 밥이 편할 리가 없다. “밥 볶을까요?” “네. 볶아야죠.”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둘의 대화가 미소를 자아낸다. 맛집에 줄서기,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춤추기 등 평소 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은 예상 밖의 결과로 이어진다. 각 에피소드에는 선우정아·한예리·구교환·박인환·심은경 등이 특별출연한다. 여행 중에 이런 보석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암시가 아닐지.

부산 배경의 에피소드에는 아무래도 눈길이 더 간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맞춰 부산에 온 하경은 한 남자와 밀면집, 보수동 헌책방, 영화관 등에서 자꾸 마주치게 된다. 남자는 영화 지망생이다. 둘은 부산을 걸으며 “요즘은 왜 사랑 이야기를 쓰지 않는 것일까, 뭐가 변한 걸까”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은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어긋나고 만다. 부산 이야기는 남자가 “언젠가는 만나겠지. 영화는 계속되니까”라는 독백으로 끝이 난다.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올해 BIFF가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자꾸 거론되는 몇몇 관계자들이 여전히 부산과 BIFF를 사랑하는지 묻고 싶다. 당신들이 변한 것은 아닐까.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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