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부산 밀면 감칠맛 비법은 피란민의 억척스러운 삶 [부산피디아 ep.06 부산밀면]
함흥서 부산 온 한국전쟁 피란민
고향의 맛 농마국수로 향수 달래
고구마 전분 대신 싼 밀가루 사용
경상도 입맛에 맞게 양념도 더해
부쩍 더워진 날씨 탓에 잠깐의 바깥 나들이에도 땀이 줄줄 흐르고 몸이 축 처진다. 이맘때면 부산 사람들이 꼭 한 번은 찾는 음식이 있다. 시원한 살얼음과 함께 말려있는 국수, 그 위에 달고 짜고 맵싹한 양념장이 그득히 올라간 밀면이다. 부산에서는 밀면을 파는 가게만 500곳이 넘는다고 하니 골목마다 밀면집이 하나씩 있다는게 과장이 아니다.
부산 사람의 유별난 밀면 사랑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경상도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맛 덕분이다. 밀면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몰린 피란민의 손에 탄생한 이곳의 향토음식이기도 하다. 고향을 등지고 떠밀리듯 내려와 먹는 것 하나에도 허덕였던 이들의 피땀과 눈물에서 밀면은 탄생했다. 가장 먼저 밀면을 만든 부산의 백년식당을 찾아 그 역사를 되짚어봤다.
■‘밀면의 원류’ 냉면의 유래
밀면은 냉면에서 파생했다. ‘차게 먹는 국수’라는 뜻의 냉면은 종류가 다양하고 역사도 깊다. 냉면의 본고장인 북한은 고려시대까지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밝힐 정도. 하지만 오늘날 모습과 비슷한 냉면은 조선시대인 17세기 후반이 돼서야 문헌에 자주 나타난다. 냉면의 재료인 메밀은 면발의 쫄깃함을 좌우하는 글루텐 성분이 쉽게 날아가는 탓에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냉면은 한반도 북쪽인 평안도에서 유래했다. 평안도는 춥고 메마른 기후 탓에 쌀이나 밀보다 메밀이 많이 났는데, 이를 국수로 만들어 동치미 국물에 차갑게 말아 먹는 방식이 퍼졌다. 오늘날 삼삼한 맛으로 잘 알려진 평양냉면이 여기서 나왔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평양 출신 냉면 요리사가 서울에 내려오면서 이남에도 점차 평양냉면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오늘날 평양냉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냉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함흥냉면이다. 함흥 지역은 개마고원 등 산악지대가 많아 감자가 잘 자랐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 초기에 감자를 가공해 전분을 만드는 공업이 발달했다. 이렇게 생산한 감자전분을 넣은 국수 요리가 생겼다. 그래서 처음에는 함흥냉면이 아닌 농마국수라 불렸다. 농마는 북한 말로 녹말을 뜻한다. 동치미 국물 대신 고기 삶은 육수를 쓴 것도 평양냉면과 다른 점이다.
■피란민 손에서 탄생한 ‘밀면’
밀면은 이중 함흥냉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18년에 발간한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 국수와 밀면’에서 “결국 밀면의 뿌리는 함흥냉면 또는 농마국수로 볼 수 있다” “함흥과 흥남 등 지역에서 먹던 음식을 부산의 환경과 입맛에 맞게 변형해 새로운 음식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북진했던 한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10월 중국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38선 이남 지역으로 퇴각한다. 바로 영화 ‘국제시장’에도 나왔던 ‘1·4후퇴’다. 이때 북한에 살던 주민이 대거 남쪽으로 피란을 떠나는데, 흥남 부두에서 배를 타고 내려온 피란민만 10만 여명에 달했다.
이렇게 함흥에서 부산에 피란 온 몇몇 사람은 ‘함흥식 냉면’을 팔기 시작한다. 당시 전쟁통인 부산에서는 함흥냉면의 재료인 감자전분을 구하기 어려워 고구마전분을 대신 넣었다. 하지만 이마저 귀한 식자재였고, 냉면을 즐겨 먹을만큼 피란민의 주머니 사정은 좋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50년대 미국이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한국에 원조하면서 부산항에 밀가루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구하기 어려운 전분 대신 값싸게 풀린 밀가루를 냉면 면발에 섞어 파는 가게들이 생겨났다. 여기에 밀가루 냄새를 감추고 경상도 사람 입맛에 맞춘 자극적인 양념을 잔뜩 넣었다. 비로소 오늘날 밀면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밀면은 맵고 달고 짠 자극적인 맛에 가격까지 냉면보다 20~30% 저렴해 피란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다. 부산시 남구 우암동, 부산진구 개금동·가야동·당감동 등 피란민이 많이 거주한 지역에 오래된 밀면 가게가 몰린 데에는 이런 역사가 뒷받침한다.
■‘백년전통’ 최초의 밀면집
이런 밀면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가게가 있다. 부산시 남구 우암동에서 같은 자리를 70년 가까이 지키고 있으며, 흥남부두 앞 내호시장 시절을 포함하면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내호냉면’이다.
현재는 4대 창업주인 유재우(48) 씨가 내호냉면 가업을 잇고 있다. 내호냉면은 1대 이영순 씨와 그녀의 큰딸인 2대 정한금 씨가 시작했다. 정 씨의 맏며느리인 이춘복 씨가 3대를 맡았고 이 씨의 외아들인 유 씨가 뒤를 이었다. 유 씨는 “1919년 10월 흥남부두 앞 내호시장에서 ‘동춘면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150~200평 규모의 가게에서 농마국수를 팔았다”고 말했다.
1·4 후퇴로 가족 모두가 미군 배를 타고 남쪽으로 피란을 오게 된다. 유 씨는 “경남 거제도와 국제시장을 거쳐 우암동에 정착한 뒤 내호시장의 이름을 딴 가게를 열고 농마국수를 ‘함흥식 냉면’으로 팔았다”고 설명했다. 우암동은 일제강점기 당시 소 막사가 있던 곳으로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 수용소로 활용됐다.
유 씨는 내호냉면에서 밀면이 탄생한 일화도 전했다. 그는 “전쟁통에 냉면 사먹을 돈이 없는 피란민들이 밀가루를 가져와서 국수를 뽑아달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 함흥냉면은 100% 고구마 전분으로 만드는데 이게 비싸다보니 미군에서 값싸게 보급한 밀가루를 대신 가져온 것”이라면서 “이런 사람이 많아지자 할머니와 어머니는 아예 밀가루로 만든 냉면을 ‘밀냉면’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는데, 이를 먹은 사람들이 하나둘 ‘밀면’이라고 줄여 부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유 씨는 “나도 어린 시절에 할머니에게 배고프다고 칭얼대면 직접 만든 밀면을 내어주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덧븥였다.
밀면은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탄생했지만 억척스럽게 삶을 개척하고자 했던 피란민의 손에서 꽃피었다. 올 여름 푹푹 찌는 무더위 탓에 입맛을 잃는다면 매콤 짭짜름하고 시원한 밀면 한 그릇은 어떨까.
지면으로 못다 한 ‘부산피디아 부산밀면’ 이야기는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youtube.com/@TheBusanilbo)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