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전랑외교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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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韜光養晦). 중국이 1990년대까지 견지한 외교노선을 일컫는 말이다. 도광은 빛을 감춘다, 양회는 몰래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쌓으며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 형편에서 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청나라 몰락 후 중국은 발톱 이빨 다 빠진 무기력한 호랑이었다. 옛 영광을 되찾을 때까지 숨 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광양회를 정책으로 공식 채택한 이는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은 최고 권력자로 등극한 뒤 대외적으로 열강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내부적으로 개혁·개방을 가속화했다. 도광양회는 성공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은 경제와 군사력에서 급속히 성장했다. 지금은 미국에 버금가는 패권국가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른 나라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에는 힘을 앞세우며 주변국을 겁박했다. 중국의 이런 외교노선을 전랑외교(戰狼外交)라고 부른다. 전랑은 ‘이리 전사’다. 이리는 포악한 맹수다. 거기다 전사(戰士)라니! 공격적이고 오만하며 무례할 수밖에 없다. 전랑이라는 말을 2017년에 제작된 영화 ‘특수부대 전랑 2’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애국심을 강요하는 ‘국뽕’ 영화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중국을 모욕하는 자는 반드시 응징한다.”

이 전랑외교라는 말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최근 한국 정부의 미국 편향 외교를 비난하면서 벌어진 논란 때문이다. 싱 대사는 “(미국과의 싸움에서) 중국이 패배한다는 데 베팅하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협박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으로, 전형적인 전랑외교 행태였다. 당연히 한중 사이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갈등이 말 한마디로 해소되기도 한다. 반면에 어처구니없는 말실수가 오랜 동맹을 깨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외교의 말은 정제된 것이어야 한다. 말이 과격해지면 외교가 설 자리는 좁아진다. 그렇다면 전랑외교는 외교의 정상 궤도에서 한참 벗어난 셈이다.

흥미롭게도 차이잉원 총통 체제의 대만은 전묘외교(戰猫外交)를 내세운다. 전묘는 ‘고양이 전사’다. 고양이처럼 유연하고 앙증맞게 다른 나라를 대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대만을 품에 끌어안으려 하고 대만은 그 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그 다툼이 오래인데, 어떻게 결착될까. 이리가 이길까 고양이가 이길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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