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대 1600명, 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 기금 1600만 원 전달
동명대학교(총장 전호환) 학생·교직원·AMP 등 1600명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전쟁 고아의 아버지’ 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 기금 1600만 원을 전달했다.
유엔평화기념관과 부산지방보훈청은 지난 17일 유엔평화기념관 공존의 광장 일대에서 유엔 피스로드 걷기대회를 개최했다. 보훈단체와 시민 800여 명은 이날 6·25전쟁 참전 22개국의 헌신 등을 기억하며 유엔평화문화특구 일대 2.2㎞를 걸었다.
이날 위트컴장군기념조형물건립추진위원장 전호환 동명대 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위트컴 조형물 기부금 전달식도 가졌다. 동명대 학생·교직원·AMP 등 1600명은 모금한 동상 건립 기금 1600만 원을 전했다.
위트컴(1894∼1982) 장군은 ‘전쟁 고아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전쟁 이재민을 돕고 한국 재건에 헌신하며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53년 부산역 대화재 당시 미군 제2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으로서 현장을 둘러보고 군수물자 무단 전용이라는 군법을 어기면서까지 이재민에게 군수 물자를 나눠줘 미 청문회에 소환됐지만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한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고 설득해 결국 더 많은 구호금을 받아 부산으로 돌아왔다.
피란민에게 부족한 의료 시설 확보를 위해 미군 장병 월급 1%씩을 모으는 기금 운동, 직접 갓을 쓰고 도포 차림으로 거리 모금 운동을 해 미국 잡지 ‘라이프’에 소개되기도 했으며, 덕분에 부산 메리놀병원 등이 설립됐다. 1954년 퇴역 후에도 한국에 남아 전쟁 고아를 위해 함께 활동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 전쟁 고아 돕기와 미군 유해 발굴에 남은 삶을 바쳐 ‘전쟁 고아의 아버지’로 불렸다. 1982년 7월 “한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여기에 묻힌 유일한 장군이다.
강성할 선임기자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