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 백스테이지] 부산시향 말러 ‘교향곡 9번’ 초연… 무대·객석 함께한 ‘침묵의 악장’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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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부산시향 600회 정기 연주회
숨이 멎을 것 같던 4악장 연주 백미
최수열, 4악장에선 지휘봉 대신 맨손

오케스트라 지휘자·단원 열정에 감사
침묵할 줄 아는 청중 의식에도 감탄 
부산시향 직원 세심한 배려도 한몫

지난 1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초연한 부산시향과 최수열 지휘자 모습. 부산시향 제공 지난 1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초연한 부산시향과 최수열 지휘자 모습. 부산시향 제공

부산시립교향악단(예술감독 최수열) 600회 정기 연주회가 열린 지난 1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한 공연은 오후 8시 57분에 끝이 났다(앙코르 별도). 단 한 곡을 연주했을 뿐이다.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 제9번(Symphony No. 9 in D major)이다. 연주 시간만 87분에 달했다.

전체 4개 악장으로 이뤄진 말러 교향곡 9번을 좀처럼 실연으로 듣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창단 6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시향으로서도 처음 도전한 곡이었다. 연주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지 2악장이 끝난 후 오케스트라 시작 전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인 오보에가 부는 A(라) 음에 맞춰 악기들은 다시금 조율했고, 3악장과 4악장 연주를 이어 갔다.

지난 1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초연한 부산시향과 최수열 지휘자 모습. 부산시향 제공 지난 1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초연한 부산시향과 최수열 지휘자 모습. 부산시향 제공

이날 연주의 백미는 마지막 4악장이다. 특히 마지막 5분은 관악기와 타악기 등 다른 악기는 모두 연주를 멈추고, 오로지 현악기만 남아서 말러가 악보에 적어 놓은 ‘죽어가듯이(ersterbend)’라는 악상 지시어에 맞춰 끊어질 듯 말 듯 반복하며 여린 소리를 구현해 냈다. 정말이지 “숨이 멎을 것만 같은” 4악장이었다. 최수열 지휘자는 4악장에선 지휘봉마저 내려놓고 맨손으로 지휘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결국 인생에서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고, 또 다른 이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장녀를 생각한 것일까? 피아니시모의 여운이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간 듯했다” “죽음과 이별을 다뤘다고 하는데 묘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초연한 부산시향과 최수열 지휘자 모습. 부산시향 제공 지난 1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초연한 부산시향과 최수열 지휘자 모습. 부산시향 제공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60명의 현악기 연주자가 한마음이 되어 ‘죽어가듯이’ 연주를 끝낸 뒤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지휘자가 높이 쳐든 맨손을 서서히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1분여 남짓. 나도 모르게 마지막 4악장이 끝난 후부터 마음속으로 ‘하나둘 셋 넷…’ 하고 세기 시작했다. 30초 정도 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최 지휘자의 손은 더 오래 걸려서 내려왔고, 청중은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숨소리는 물론이고 침 삼키는 소리조차 방해가 될까 꾹 참았다. 부산시향 창단 61년 만의 첫 도전, 말러 교향곡 9번 하이라이트 ‘침묵 악장’은 그렇게 멋지게 완성됐다. 이런 멋진 라이브 공연을 선사해 준 90여 명의 부산시향 단원과 최 지휘자의 열정에 감사했고, 누군가 들뜬 마음으로 섣부른 ‘브라보!’를 외치지 않아서 고마웠다. 부산시민들의 문화 의식 수준에 또 한 번 탄복한 순간이었다.

게다가 공연을 마친 뒤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부산시향 사무국 직원과 무대·시설팀에서 4악장의 감동을 청중에게 더 잘 전달하기 위해 ‘007 작전’하듯 에어컨을 껐다는 것이다. 부산시향 백승현 부지휘자는 “대극장 실내에서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가 정말 크다”며 “극장이 만석인 데다 날씨까지 더워서 에어컨 가동을 안 할 순 없어 고민 끝에 적절한 타이밍에 잠깐 껐다 켜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확하게 180페이지 끝에서 두 번째 마디가 시작될 때 무대 뒤에서 악보를 보고 있던 조영훈 차장이 무대감독에게 신호를 주었고, 무대감독은 다시 시설팀에 연락해 에어컨을 껐다가 박수가 터져 나오는 순간 다시 에어컨을 가동했다.

지난 1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초연한 뒤 팬들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는 부산시향 최수열 지휘자. 부산시향 제공 지난 1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초연한 뒤 팬들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는 부산시향 최수열 지휘자. 부산시향 제공

이날 연주에 대한 음악 애호가들의 호평도 잇따랐다. ‘말러를 위한 작은 모임’ 카페지기 신동준 씨는 전주에서 일부러 음악회를 보러 부산에 왔고, 이후 카페에 남긴 리뷰를 통해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의 심히 건조한 음향을 모이스처라이징 해 버린 지휘자와 단원들 모두 정말 수고 많았다”면서 “1분이 넘는 완벽에 가까운 침묵 악장을 선사해 준 관객들에게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실로 소름 돋는 감동의 침묵이었다”고 평가했다.

음악 애호가이자 부산문화의 든든한 후원자인 최우석 치과의원 원장도 SNS에 재기 넘치는 코멘트를 남겼다.

“침묵의 5악장에서는 부산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숨소리 하나 침 삼키는 소리 하나도 조심하는 부산 관객들에게 감탄했다. 이제 부산시의 과감한 지원과 투자만 있으면 된다. 부산 시민들은 준비됐다, 부산시 됐나?!”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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