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는 되고 피고인은 안 되는 신상 공개… 특별법 ‘급물살’
기소 전 피의자→재판 중 피고인
‘부산 돌려차기’ 계기 확대 추진
구체적 요건 적용해 일관성 확보
심의위원회 강화로 남발은 막아야
“범죄 예방 효과 없어” 신중론도 커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계기로 현행 범죄자 신상 공개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성범죄가 인정됐지만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라는 이유로 판결 확정 전까지 가해 남성의 신상 공개가 불가능했던 탓이다. 심의위원회 강화 등 보완 장치를 두고 신상 공개를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크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에 위배되고 범죄 억제 효과가 적다는 등의 이유로 신중론 또한 만만치 않다.
18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기소 전인 피의자에게만 국한된 신상 공개 범위를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으로 확대하는 특별법 제정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 필요성을 언급하자 여당을 중심으로 법안이 발의되고,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하는 등 급물살을 타고 있다.
법무법인 시우의 최재원 변호사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두려워 신상 공개 확대를 막는다면 수사 단계인 피의자의 신상 공개도 이뤄져서는 안 될 것”이라며 “특히 돌려차기 사건처럼 재판 단계에서 추가적인 중대범죄가 발견된 경우 신상 공개는 더더욱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나아가 피해자가 신상 공개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나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기 수사 단계에서 신상 공개 없이 넘어간다면 보복 범죄 등을 두려워하는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보니 공적 수단이 아닌 유튜버와 같은 사적 제재에 기대게 된다”며 “신상 공개에 관해 엄격한 심의 절차를 만들고 심의위원회를 강화해 신상 공개를 남발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신상 공개는 피해자 사망 여부가 아니라 피해자와 그 주변이 받는 2차 피해 등 다양한 측면을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승재현 선임연구위원은 “현행법도 국민의 알 권리나 재범 방지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특정강력범죄가 아니더라도 신상 공개를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승 위원은 “다만 무차별적인 신상 공개는 가해자의 가족이나 주변인의 삶이 붕괴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적재적소의 신상 공개를 위해 심의위원회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부 전문가의 비율을 높이고, 판단의 일관성을 높이기 위해 경찰청 단위에서 전국의 신상 공개를 관할하는 방안도 있다”고 밝혔다.
신상 공개에 명확한 기준을 적용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경찰대 한민경 범죄학과 교수는 “지금까지의 신상 공개는 일관성 없이 여론에 떠밀려 이뤄진 측면이 있다”며 “신상 공개의 구체적인 요건을 정해 이를 충족하면 공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형사소송법 체계가 지나치게 피고인의 권리 보호를 중점으로 작동해 왔다는 지적도 있다. 동의과학대 김병수 경찰경호행정학과 교수는 “피고인의 무죄 추정을 우선시하다 보니 오히려 최우선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피해자의 권리가 무시되곤 한다”며 “피고인 권리 구제에 치중하는 법의 시대는 막을 내려야 한다. 피해자와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상 공개 확대는 범죄 억제 효과가 없고, 여론을 통한 ‘마녀사냥’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재판부가 들끓는 여론 때문에 판결 이전에 예단을 가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부산의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신상 공개를 적극 시행하는 미국에서는 재범률을 낮추지 못해 오히려 무용론이 나오는 실정”이라며 “만에 하나 수사나 하급심 재판에서 잘못된 판단으로 신상 공개가 이뤄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