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교과 벗어난 수능 배제” 발언, 교육계 일파만파
비문학 등 사교육비 절감 취지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 경질
교육과정평가원 감사 칼날 예고
킬러문항 없어져 ‘물수능’ 우려
입시업계 “재수생 양산 역효과”
학부모 “유형 바뀌면 고3 혼란”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며 사실상의 ‘수능 손질’을 교육당국에 주문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발언 직후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가 예고되는 등 ‘칼날’이 수능 관리 기관을 직접적으로 향하면서 교육계는 대혼란에 빠진 모양새다. 올해 수능 난도가 낮아져 속칭 ‘물수능’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과 수능 출제 방향성 변화 등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수능 손질 주문한 대통령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공정한 변별력은 모든 시험의 본질이므로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비문학 국어문제라든지,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 문제 출제는 처음부터 교육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으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발언은 이 장관의 교육개혁 업무보고 과정에서 이뤄졌다. 대통령실 등은 윤 대통령이 공교육에서 다루지 못하는 문제가 자꾸 수능에 나올수록 사교육 의존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이 같은 발언을 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다음날 수능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를 심사했고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을 대기 발령 조치했다. 윤 대통령은 올 초부터 ‘수능 정상화’를 통한 공교육 강화를 주문했지만 지난 1일 치뤄진 6월 모의고사에서 이 같은 지시가 반영되지 않은 것을 두고 이 장관 등을 강하게 문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물수능?
취지는 공교육 강화·사교육비 절감이었지만 교육계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쉬운 수능’으로 해석한다. 윤 대통령이 지적한 비문학 국어 문제와 수학, 탐구영역 등에서의 융합형 문제는 매년 이른바 ‘킬러 문항’으로 불리며 수능 난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고 혼란 진화에 나섰지만 관심은 올해 수능 난이도로 쏠리는 분위기다. 대통령이 ‘교과과정 내 출제’를 강조함에 따라 올해 수능은 이른바 ‘물수능’(난이도가 낮은 수능을 의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국어 독서 문항에서 생명과학·국제경제 등 타 교과목의 지식을 요하는 비문학 지문은 줄고 대신 교과서·EBS 지문을 활용하는 문제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수학에서도 여러 개념을 융합해 정답률이 5%도 되지 않는 초고난도 문항 수는 축소될 전망이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평가원이 3월에 EBS 직접 연계 비율을 높이겠다고 한 것도 대통령의 발언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다”며 “(올해 수능에서) 국어 등 과목의 EBS 교재 등과 직접 연계가 눈에 띄게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킬러문항이 사라지고 비문학 지문 난도가 낮아지면 변별력 상실로 대거 재수생이 양산되고 오히려 사교육 시장이 강화되는 역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수능이 쉬워질 경우 N수생이 늘어나고 최상위권 변별력이 저하, 의대 쏠림이 심화된 부작용이 나타난 전례가 있는 까닭이다. 특히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는 학생이 증가할 경우 오히려 수험생 간 경쟁은 고교 내신으로 확대될 수 있다. 대입에선 특정 전형요소 비중을 높이면 다른 요소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일부 수험생, 학부모들은 수능을 150일 남긴 시점(19일 기준)에서 대통령의 출제 근간을 흔드는 발언이 혼란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여야는 윤 대통령의 수능 출제와 사교육 관련 언급을 두고 신경전을 이어 가고 있다. 여당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당연한 얘기"라며 엄호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가벼운 입에 교육계가 혼란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