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치 불신'이 부추긴 '코인 불신'
김종열 경제부 금융·블록체인팀장
여야, 코인 둘러싼 의혹에 공방 치열
상대 공격 위해 도 넘은 ‘코인 악마화’
애꿎은 블록체인 산업 전반에 ‘불똥’
부산 디지털상품거래소 무기한 연기
“귀당 대표님 아들은 코인회사 임원이라며.”
굳이 경제부 기자라서가 아니더라도 정치 이야기는 대체로 삼가고 싶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거니와, 지난 대선 땐 투표조차 하지 않았다. 국민주권을 포기한 게 뭐 그리 자랑이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도저도 찍기 싫은 40대 남성의 투표율이 가장 낮았다는 선거 직후의 뉴스에 양심의 가책을 덜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부터의 이야기 역시 경제 이야기다. 정치적 해석은 사양하겠다.
지난 12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의 일이다. ‘코인 의혹’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두문불출하던 김남국 의원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당 A의원은 뻔뻔하다며 퇴장을 요구했고, 그걸 지켜보던 야당 B의원이 A의원에게 “그만 하시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귀당 대표님 아들은 코인회사 임원이라며.”
당시 상황을 유튜브 영상으로 시청하던 기자는 잠시 행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상을 다시 돌려보니 정황상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자격이나 있냐’라는 의미인 듯 했다. 국회의원과 심지어 그 가족을 하필 ‘개’에 비유한 듯해 다소 유감이지만, 또한 이보다 적절한 속담은 없어 보인다. 어쨌든, 문맥은 이해했다손 치더라도 ‘나무랄 자격’을 묻는 기준이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코인회사’에 다니는게 문제라는 말인가. 아니면 ‘임원’이라는 지위가 문제라는 건가.
잠시 다음 보기 문장들을 보자.
① “느그 아들은 코인회사 임원이라며.”
② “느그 아들은 고리대금업체 임원이라며.”
③ “느그 아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 임원이라며.”
영화 ‘친구’의 명대사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를 연상케 하는 이 세 문장의 뉘앙스는 같은가 혹은 다른가. 고리대금업체 혹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다니거나 다녔다는 것은 그 회사가 행한 나쁜 짓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아래 두 문장은 비난의 의도가 담긴다. 그럼 첫 문장의 ‘코인회사’도 그러한가. 적어도 12일 B의원의 생각은 그러했던 것 같다. B의원에게 있어 코인회사는 고리대금업체나 동양척식주식회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악의 축’이었다. 앞으로 블록체인 개발자들은 소개팅 자리에서 자신의 직업을 숨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기혼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을 대하는 여당의 태도도 매한가지다. 문제의 핵심은 국회의원이 나랏일보다 개인 자산 불리기에 몰두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부적절한 정보 취득 혹은 거래는 없었냐는 의혹일 테다. 그런데 여당의 공격 논리는 ‘(청년들 피땀 훔친) 코인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애매한 방향으로까지 확대재생산된다. 이렇듯 정치권에선 언제부턴가 ‘코인회사’는 범죄집단이 됐고, ‘코인’은 범죄의 장물이 됐다. 불과 몇 년전, ‘토큰 경제’야말로 경제 민주화를 완성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던 그들이다.
여야가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것은 꼴불견이지만, 정치 고관여층이 아닌 기자로선 눈 감고 귀 막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야의 고래 싸움에 애먼 새우 등이 터지는 게 문제다. 그 불똥이 고스란히 국내 블록체인 업계로 튀고 있다. 마치 업계 전체가 사기꾼 집단인 양 매도되면서 산업이 위축된다. 먼 데서 사례를 찾을 것도 없다. 당장 블록체인 특구로 관련 산업을 육성하려는 부산도 피해자 중 하나다. 지난달 말 예정됐던 부산 디지털상품거래소 최종 청사진 발표가 일련의 정치 이슈로 그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최근 여당은 ‘코인에 투자했다’는 것만으로 상대를 조리돌림하던 며칠 전의 스스로를 깨끗이 잊고, ‘코인회사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비난 받을 일이냐’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리고 그 억울함이 무색할 정도로, 곧바로 여당 대표 아들이 다니는 코인회사와 관련해 코인 먹튀 논란이 추가로 불거졌다. 지켜보던 일반 시민들도 “그러면 그렇지”라는 분위기다. ‘정치 불신’이야 여야 정치인들의 자업자득이라지만, ‘코인 불신’의 책임 역시 온전히 관련 업계만의 자업자득일까. 동의할 수 없다.
이번 코인 사태와 관련해 뭐가 그렇게 억울하신지 연일 울분을 토하는 여야 정치인들께 이 한 마디만 말씀드리고 싶다. 진짜 울고 싶은 사람들은 따로 있다. 당신들 때문에 제 직업조차 떳떳히 밝히기 어려워진 젊은 블록체인 개발자들이 당신들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억울해 보인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