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올 여름밤도 소음에 잠 못 이루나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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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부산 등서 요청한 이륜차 소음 규제
환경부 호응, 30년 만에 개선 시도
최근 규제개혁위에 걸려 끝내 무산

시민 고통 배려 없는 판단 아쉬워
인력·장비 한계 지자체 단속 난망
근본 대책 없어 올해도 불면의 밤

이제 겨우 하지(夏至)인데 날씨는 벌써 한여름 폭염의 기세다. 낮뿐 아니라 밤에도 은근히 더운 게 올여름을 어떻게 견뎌 낼지 조금 걱정이 된다. 에어컨을 켜고 자기에는 아직 어색해 창문을 열어젖혀 보지만, 한여름 밤만 되면 더 기승인 도시의 소음을 벗어날 재간이 없다.

그중에도 특히 오토바이 소음은 짜증 유발이나 수면 방해 등 인간의 심리·생리적 요소에 부정적 영향이 크다. 안 그래도 숙면이 어려운 한여름 밤, 허공을 찢을 듯 울리는 굉음은 시민에게 ‘한밤의 테러’와 다름없다. 더욱이 해수욕장이 많은 부산은 매년 여름이면 오토바이 굉음과 폭주로 인한 고통이 가히 전국 최고다.

민원에 견디다 못한 부산 해운대구가 직접 국민청원으로 문제를 제기한 게 벌써 2년 전이다. 그사이 다른 지자체들도 뜻을 같이해 정부에 오토바이 소음 규제 강화를 요청했다. 전국적인 움직임에 전담 부처인 환경부도 작년 3월 이륜차 소음 규제 강화 발표로 화답했다. 이 사례는 지자체의 문제 제기에 정부가 호응한 좋은 본보기로 회자했다.

그러나 끝내 현실 정책으로 채택되는 데는 실패했다. 최근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가 환경부의 소음 규제 강화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해 재검토 의견을 밝힌 것이다. 30년 만에 오토바이 배기소음 기준을 강화하려던 환경부의 계획은 규제개혁위에 막혀 무산되고 말았다. 부산의 선도적인 노력으로 정부의 30년 묵은 정책을 바꿀 기대에 부풀었던 시민으로서는 매우 아쉽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계속 오토바이 소음에 대책 없이 시달려야 하는 시민들로서는 규제개혁위의 이번 결정이 정말 서운하고 야속하게 느껴진다. 굉음의 고통이 도시 안전은 물론 시민 안녕까지 해치고 있는 지경임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규제개혁위가 단번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싶다.

환경부가 1993년에 마련된 이륜차의 배기소음 기준 강화에 나선 것은 이 기준이 지금 현실과 맞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코로나 사태로 배달 용도 등 이륜차가 크게 늘면서 소음 민원이 급증했다. 정부로서도 더는 이런 상황을 놔둘 수 없게 된 것이다.

환경부는 현행 102~105㏈인 오토바이의 배기소음 허용 기준을 86~95㏈로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륜차가 정지 상태에서 출발하거나, 저속에서 고속으로 갑자기 속도를 높일 때 배기소음 피해가 가장 크다는 점을 고려했다. 강화된 기준을 이륜차 제작 단계부터 적용해 근본적으로 소음 피해를 줄인다는 방침이었다.

규제개혁위는 평온한 생활 환경을 조성하려는 명분은 인정하면서도 국제적인 흐름과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지자체가 이륜차 소음을 단속할 수 있는 다른 근거가 있는 상태에서 환경부의 추가 규제는 지나치다고 보았다. 소음 기준 강화에 따른 운전자들의 반발 요인도 감안했다.

규제개혁위의 이런 판단에 일면 수긍할 수 있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비춰 본다면 다소 한가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 같다. 규제개혁위의 지적처럼 지금 지자체가 주거 지역에서 운행되는 이륜차를 단속할 근거가 있기는 하다. 환경부가 작년 10월 ‘이동소음 규제 지역’ 내에서 배기소음 95㏈을 넘는 이륜차를 단속 대상에 포함한 조치가 그것이다. 지자체가 자체 고시를 통해 단속 지역과 시간을 정하면 된다. 이 범위 안에서 소음이 큰 이륜차의 운행을 제한할 수 있고, 위반 대상엔 과태료를 물린다.

그러나 현재 지자체의 행정력으로 이를 실행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환경부 방침에도 지금까지 자체 고시를 마련한 지자체는 경기도 광명시가 유일하다. 고시 제정 절차를 시작한 곳도 충남 천안시와 충북 청주시 정도다. 고시를 이미 만든 광명시도 실제 단속은커녕 아직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고 한다.

단속에 나설 인력과 장비 확보의 한계 등 행정력이 제한된 지자체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굉음의 오토바이를 단속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또 지자체 간이나 경찰, 한국교통안전공단 등과의 협조 체계 마련도 여전히 요원하다. 게다가 이륜차 운전자들은 이동소음 규제 지역 내 운행 제한·금지 조치에 대해 소송까지 할 태세다. 이런 마당에 환경부의 소음 기준 강화 계획까지 물거품이 됐다. 굉음의 이륜차 운전자들이 혹 정부와 지자체에는 자기들을 단속할 실질적인 수단이 없다고 여기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시민으로서는 한여름 더위만큼 답답하고 짜증 나는 상황이다. 정부가 개선안을 더 찾아보겠다고는 했지만, 시민들이 올여름에도 오토바이 굉음에 잠 못 드는 밤을 면하기는 어렵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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