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224. 거친 필법에 담긴 야산의 정취, 변관식 ‘관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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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小亭) 변관식(1899~1976)은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금강산의 화가’로도 불린다. 황해도 옹진 출생으로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변관식은 외조부인 소림(小琳) 조석진의 돌봄 속에 성장했다. 조석진은 1918년 발족해 1936년까지 이어진 ‘서화협회’를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근대기 한국 화단에 남다른 족적을 남겼다.

조석진은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할아버지 임전(琳田) 조정규의 화풍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조정규는 특히 ‘어해화’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예술적 가풍이 남달랐던 변관식의 성장 배경은 자연스럽게 그를 미술의 길로 인도했다.

변관식은 이상범, 노수현, 이용우와 함께 1923년 서화단체 ‘동연사(同硏社)’를 조직했다. 동연사는 전통적 관념산수에서 벗어나 새로운 동양 화단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형성된 단체이나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치기 전에 해산됐다. 변관식은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김은호와 함께 신남화풍을 익혔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는 등 작가로서 기량을 뽐냈으나, 1937년부터는 서울을 떠나 유랑생활을 시작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모색했다.

실경을 그리며, 재야의 화가로 지낸 변관식은 유랑의 여정 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특히 민족정기의 표상이자 한국적 자연미의 정수를 보여주는 금강산에 빠져 본격적으로 금강산을 그리게 됐다.

변관식의 화풍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초기는 서화미술원이나 일본 유학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나 자신만의 화풍을 쌓아가기 위해 기반을 다져 나간 시기이다. 이 시기에서부터 드러나는 거친 화면 처리와 다각적인 구도는 변관식의 독자적 개성의 전개를 예측하게 한다.

중기는 전국을 여행하며 실경을 그린 1937년부터 1957년까지, 후기는 1957년부터 타계하기까지로 특유의 적묵법과 파선법의 원숙한 사용을 통해 변관식 미술의 절정을 이룬다.

먹을 쌓아 올리는 적묵법과 마치 선을 깨트리듯 표현한 파선법은 변관식 화풍의 대표적 특징이다. 중기부터 적묵법과 파선법의 사용이 드러나지만, 1957년 이후부터는 필법이 원숙해지며 대담한 구도와 어우러져 더욱 깊이 있는 화면을 구성하게 된다.

1959년 작품인 ‘관폭도’는 후기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변관식풍 화법을 잘 드러낸다. 과감한 구도로 이루어진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야산의 정취를 담아낸 거친 필법이다. 투박한 붓질은 험한 산세와 거센 폭포의 물결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정자를 향해 올라가는 인물은 야산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화면의 분위기를 전환한다.

막대기 하나를 손에 쥐고 산을 오르는 인물은 변관식의 작품에는 자주 등장하는데, 전국의 산을 오르며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떠났던 화가의 초상을 화폭에 담은 듯하다.

김경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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