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is back! [남형욱의 오오티티]
검은 가죽재킷, 커다란 덩치, 짙은 선글라스 뒤로 감정을 숨긴 과묵한 ‘터미네이터’. 80년대 미국 액션 영화의 상징이었던 전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돌아왔다. 지난달 25일과 이달 5일 두 개의 콘텐츠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첫 번째는 그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액션 드라마 ‘푸바’, 두 번째는 그의 인생 여정을 솔직하게 담은 다큐멘터리 ‘아놀드’다.
먼저 푸바는 CIA 요원이라는 직업을 평생 숨긴 스파이 아빠와, 마찬가지로 CIA 요원 선발 테스트에서 최고점을 받았지만 집에서는 착한 모범생을 연기하던 딸이 총알 빗발치는 현장에서 만나 꼬여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푸바는 ‘엉망진창’이라는 말. 상대에게 속았다는 배신감에 엉망이 된 부녀 관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작전 현장의 불협화음을 의미한다.
가족에게 정체를 숨긴 요원이라는 설정은 그의 과거 액션 히트작 ‘트루라이즈’가 떠오르지만, 나이 든 터미네이터는 과거에 비해 힘이 많이 빠졌다. 몸놀림은 둔탁하고 삐걱댄다. 주름진 얼굴을 덮은 흰 수염은 76세라는 나이를 실감케 한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맥이 풀려 있느냐. 그건 아니다. 모자란 액션은 가족애와 코미디로 메꾼다.
사실 그는 ‘코만도’ ‘프레데터’ ‘토탈리콜’ 등 영화를 성공시키며 액션 배우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지만, 끊임없이 캐릭터 변화를 추구했다. 겉모습은 정반대지만 속은 닮은 쌍둥이 형제 ‘트윈스’, 유치원에 위장 취업한 경찰 ‘유치원에 간 사나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분투하는 아빠의 활약 ‘솔드아웃’ 등 가족애를 그린 코미디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 ‘미스터 올림피아’ 7관왕을 달성한 완벽한 육체에 대비되는 어눌한 발음. 굳게 입을 다물었던 터미네이터가 치아를 보이며 순박하게 웃는 순간, 이 괴리감에서 오는 친숙함은 관객을 매료시켰다. 푸바에서도 마찬가지다. 딸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서툴지만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모습은 이상적인 가족 코미디 그 자체다.
푸바가 이상이라면, 아놀드는 현실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각각 보디빌더, 영화배우,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위기를 돌파하고 각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는지 회고한다. 제임스 캐머런, 실버스타 스탤론, 린다 해밀턴 등 80년대 감독과 인기배우가 출연해 생동감을 더한다.
사실 그의 가족사는 그렇게 화목하지 못했다.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당한 학대.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그의 형. 케네디 대통령의 외조카와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가정부와 불륜으로 혼외자를 키워 이혼하는 등 인생의 고비가 많았다. 다큐멘터리는 그런 고비의 순간마다 그가 느낀 솔직한 속마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과오를 반성하고, 눈물로 잘못을 뉘우친다. 아놀드는 그의 자서전이자 반성문인 셈이다. 쇳덩어리인 줄 알았던 터미네이터는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팬으로서 터미네이터의 속살을 들여다본 것 같아 기쁘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