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촌 의료 현실, ‘시장 원리’만으론 한계
임규현 농협창녕교육원 교수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헌법 제36조에는 이른바 국민보건권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농촌 주민들에게 이 조항은 단순히 단어의 나열에 불과하다. 내 건강을 관리해 줄 의료시설이나 ‘의사 선생님’을 농촌 현장에서 만나기란 사실상 쉽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 지역의 의료 공백 심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거주지에서 가까운 곳에 응급의료센터는 아예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갑자기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서도 안된다. 병·의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전국 612개 면(面) 지역을 분석해 보니 2020년 기준 병원이 한 곳도 없는 지역이 538곳(87.9%)이나 됐다. 교통마저 크게 불편해 아픈 몸을 이끌고 읍내까지 나가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설령 병원이 있다 하더라도 큰 병은 치료가 불가능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서울 등 대도시 병원까지 가야 하는 형편이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거주지 외 다른 지역 큰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은 원정 진료비는 무려 21조 8559억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21%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의료 환경이 열악한 농촌 지역에 공보의마저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공보의 배출 인원이 해마다 줄어 공급 여력이 없다는 어려움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이유를 내세워 농촌 기초 의료 체계의 보완을 미룬다면 ‘실패한 정부의 의료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최근 정부는 부족한 의료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과대학 신설보다 기존 의대 정원 확대로 방향을 잡으면서 공공 의대와 지역 의대 설립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의료 공백이 심각한 농촌이나 지방 소도시에선 의대가 없는 지역에 의대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단순히 정원만 늘려서는 이들이 필수·지역 의료에 종사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지역 의대에서 장학금으로 양성한 의사는 일정 기간 지역에서 일하게 하는 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농촌이 대도시에 비해 의료·복지 서비스가 열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돈이 되는 곳에 사람과 투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 서비스는 의사와 환자 간 의료 정보의 비대칭성과 누가 언제 어떻게 환자가 될지 모르는 의료 수요의 불확실성, 의사만이 의료 시술 행위를 할 수 있는 의료 공급의 독점성 때문에 시장에 완전히 맡겨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공공의 규제가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농촌 의료 공백 문제를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로만 풀려고 하면 의료 공백을 넘어 ‘의료 진공’ 상태로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람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료·복지·교육·교통 등의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무엇보다 열악한 농촌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 의대와 지역 의대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 유관 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농촌의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