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 원어치 반찬거리 훔친 6·25 참전 용사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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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 간 젓갈·참치캔 절도
“당장 쓸 돈 없어… 죄송” 진술
부산진서, 지역 방문봉사
“고령 국가유공자 돌봄 절실”

부산진경찰서는 지난 7~20일 국가유공자들을 대상으로 방문봉사를 펼쳤다. 부산진서 제공 부산진경찰서는 지난 7~20일 국가유공자들을 대상으로 방문봉사를 펼쳤다. 부산진서 제공

6·25전쟁에 참전한 국가유공자가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훔치다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금정구 한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혐의(절도)로 80대 남성 A 씨를 검거했다고 22일 밝혔다.

A 씨는 지난 4월부터 5월 초까지 한 달여 간 금정구 한 소형 마트에서 수차례 젓갈과 참치캔, 참기름 등을 훔친 것으로 확인됐다. A 씨의 절도 행각은 여러 번 반복됐지만 피해 금액은 합쳐서 8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물건이 조금씩 없어진다는 마트 측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CCTV로 A 씨의 범행 장면을 확인하고 주소지를 파악했다. A 씨는 “반찬거리를 사야 하는데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부족해서 물건을 훔쳤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죄송하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생계형 절도범으로 보였던 A 씨에 대해 경찰이 신원을 확인한 결과, A 씨는 6·25전쟁 참전 용사로 국가유공자였다.

A 씨는 군대를 제대하고 여러 일을 하다가, 선원으로 30년 가까이 일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벌어뒀던 돈은 가족들 생활비 등으로 사용됐고 수중에 남은 돈은 거주하고 있는 주택 전세금이 전부였다. 경찰 확인결과 A 씨가 국가로부터 받는 수당 등 지원금은 60만 원 남짓. 별다른 직업이 없는 A 씨가 당장 쓸 수 있는 돈은 부족한 형편이었다. A 씨는 현재 가족들과 연락이 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건이 경미한 데다 생활 형편과 국가 유공 등을 고려해 A 씨에 대해 즉결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국가에 헌신했지만 생활고를 겪는 국가유공자가 주위에 많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 봉사에 나섰다. 부산진경찰서는 지난 7일부터 20일까지 2주 동안 부산지방보훈청에 협조를 요청해 부산진구 내 거주하는 국가유공자 중 80세 이상 독거노인 15가구를 방문했다.

경찰이 방문한 국가유공자들 상당수가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홀로 거주해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전포동에 거주하는 한 국가유공자는 다리에 총상을 입어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고, 아내마저 지병으로 일어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골목에 위치한 주택가라 학생들이 때때로 담배꽁초를 집 앞에 모아 버리기도 하는 등 범죄 환경에 노출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경찰은 국가유공자들 주거지 주위 방범 진단과 범죄 노출 환경을 파악해 예방에 나섰다. 절도와 보이스피싱 등 범죄 예방 교육도 함께 진행하며 이들에게 감사 인사와 선물도 전달했다. 부산진경찰서 관계자는 “국가유공자들이 ‘적적했는데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오히려 경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며 “고령인 국가유공자에 대한 돌봄과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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