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반란 끝났지만… 믿었던 용병에 발등 찍힌 푸틴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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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무장 반란
수장 프리고진 체포 명령에 반발
모스크바 인근까지 손쉽게 진격
한때 붉은광장 폐쇄되고 초긴장
벨라루스 중재로 병력 철수 결정
최악 피했지만 푸틴 심각한 타격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24일(현지 시간) 점령 중이던 남부 로스토프나노두에서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무장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24일(현지 시간) 점령 중이던 남부 로스토프나노두에서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하던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이 ‘일일천하’로 마무리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각각 한 발씩 물러서 24일(현지 시간) 극적 타협이 이뤄졌다. 푸틴 대통령은 최악의 상황을 피했지만 2000년부터 러시아를 통치한 이래 가장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리고진 국경 넘어… 푸틴 “등에 칼”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본격 감지된 건 지난 23일 프리고진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을 공개 비난했을 때부터였다.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의 야전 캠프에 미사일 공격을 지시한 쇼이구 장관을 응징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며 “이는 쿠데타가 아니라 ‘정의의 행진’”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당국은 이날 프리고진의 발언이 선을 넘었다고 보고 무장 반란 혐의에 관한 수사 계획을 발표하고 체포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의 반란 혐의 적용에 반발한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에서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진격했고,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의 국경 검문소를 순식간에 통과했다. 프리고진은 지난 24일 오전 7시 30분 로스토프주의 주도 로스토프나도누의 군 사령부를 접수하고 비행장 등 모든 군사기지를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그너 그룹은 이후 북진해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500km 떨어진 보로네시주의 주도 보로네시까지 접수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후 TV로 긴급 대국민 연설에 나서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반역에 직면했다”며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1917년에도 러시아의 등에 칼을 꽂는 공격이 가해졌다. 가혹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면서 주민과 인사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면서 주민과 인사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바그너 진격에 모스크바 초비상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의 경고에도 “아무도 투항하지 않을 것”이라며 진격을 이어 갔다. 지난 24일 오후 바그너 그룹은 모스크바 남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리페츠크주까지 접근했다.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로 빠르게 접근해 오자 모스크바에는 긴장이 고조됐다. 러시아는 이날 수도 모스크바에 대테러작전 체제를 발령했다. 러시아 반테러위원회(NAC)는 이날 성명에서 “예상되는 테러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러시아군이 대테러작전의 일환으로 필요한 작전과 전투 조처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붉은 광장과 시내 주요 박물관이 폐쇄됐으며, 시 당국은 도로 폐쇄 가능성에 따라 주민 통행 자제를 촉구했다.

모스크바 남부 외곽 지역에는 장갑차와 병력이 주둔한 검문소가 설치됐다. 모스크바로 향하는 일부 도로에서는 바그너 그룹의 진격을 막기 위해 굴착기 등 중장비가 도로를 파헤쳐 끊는 모습도 포착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저녁 대국민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의 통제력 상실이 입증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모스크바 턱밑서 타협

주요 7개국(G7)이 바그너 그룹의 반란 사태를 논의하는 등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이 벨라루스 대통령실에서 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바그너 그룹이 24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협상해 병력 이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후 프리고진은 24일 오후 8시 30분께 오디오 메시지를 통해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하던 병력에 철수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프리고진의 형사입건이 취소될 것이며 프리고진은 벨라루스로 떠날 것이라고 전했다. 바그너 그룹 병사들도 기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협상의 상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크렘린궁은 “유혈사태를 피하는 게 책임자 처벌보다 중요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23일 시작된 프리고진의 무장 반란은 24일 밤늦게 바그너 그룹이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나면서 끝을 맺었다.

푸틴 대통령으로선 이번 사태로 믿고 쓴 바그너 그룹으로부터 등에 칼을 맞은 데다 상황 수습도 결과적으론 부하처럼 대하던 루카셴코 대통령의 손에 맡긴 셈이라 이래저래 체면을 구기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프리고진이 푸틴에 굴욕감을 안겨주면서 더는 폭력에 대한 독점이 없다는 걸 보여줬다'고 했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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