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된 느낌이던 부산 ‘말러’ 서울에선 더 과감해졌다 [부산문화 백스테이지]
부산시향, 25일 교향악축제 폐막 공연
600회 정기 연주회 선보인 곡 다시 연주
부산과 달리 4악장 마무리 암전 택해
'박수 빌런' 등장으로 침묵 여운 깰 뻔
연주 홀과 청중의 자세 감동 크기 결정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언제, 어디에서,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클래식이다. 25일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3 교향악축제’ 폐막 공연으로 주목받은 부산시립교향악단(최수열 예술감독)의 말러 ‘교향곡 9번’ 연주는 더더욱 그러했다. 교향악축제 공연에 앞서 지난 16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제600회 정기 연주회를 겸해 같은 곡으로 부산 청중과 먼저 만났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 연주는 말러 곡 외에도 소프라노 서예리 협연으로 모차르트의 ‘엑술타테, 유빌라테 K.165’도 함께 선보였다.
부산과 서울에서 두 번의 연주를 선보인 부산시향의 말러는 분위기가 달랐다. 부산 연주가 뭔가 정돈된 느낌이었다면, 서울 연주는 좀 더 과감해지면서 역동적이었다. 최수열 지휘자나 오케스트라 입장에서도 부산에선 초연인 만큼 잘 끝내야겠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고, 서울 연주에선 뭔가 다른 걸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이 있어서라고 짐작된다. 물론 지휘자는 항상 리스크를 감당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같은 말러 곡 ‘교향곡 1번’으로 교향악축제 개막 공연을 담당했던 광주시향 홍석원 지휘자는 부산시향 연주를 보고 나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기대 이상이다. 밸런스가 좋았다. 거친 소리와 우아한 소리를 다 갖춘 오케스트레이션이 쉽지 않은데 오늘 연주는 두 가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올 2월 부산시향을 직접 지휘한 적이 있지만 그동안 지휘자가 확실히 연습을 더 시킨 듯했다. 정말 잘했다.”
홍 지휘자의 극찬이 아니더라도 부산시향의 이번 서울 연주는 몇 가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첫째는 연주 홀 사정이고, 둘째는 청중의 자세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음악이 주는 감동이다. 최 지휘자 말처럼 서울 연주에선 잔 실수가 크게 눈에 띄진 않았다. 지휘자 입장에선 오히려 부산 연주보다 수월했다고 전했다. “한번 해 보니까 대곡도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완주하는 길을 알게 된 거잖아요. 이 대목에선 힘을 좀 아껴야 하고, 4악장에선 더 쏟아내야 하는 식으로요.”
다만, 연주 홀 상황은 아주 달랐다. 음악 전문 홀이 아닌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은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연주자들이 항상 힘들어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울림이 좋지 않아서 같은 연주를 하더라도 힘이 더 들어가고, 객석에서 느끼는 감동의 폭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부산시향 임홍균 악장은 “평소에도 이런 울림이 좋은 곳에서 연주할 수 있어야 할 텐데…”라며 말을 아꼈다. 이제 부산도 몇 년 있지 않으면 부산국제아트센터나 부산오페라하우스 같은 전문 홀이 생기는 만큼 기대가 크다. 부산시향이 이 음악 홀을 활용할지는 미지수다.
또한 부산 연주 땐 부산시향 사무국 직원들이 ‘007 작전’하듯 대극장 에어컨을 껐다 켜는 식으로 공연장 내 소음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서울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암전 전략을 펼쳤다. 악보 182페이지가 넘어갈 즈음 객석과 무대 조명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연주가 끝날 무렵엔 악보를 비추는 아주 작은 불빛만 남았다. 그 뒤로 2분가량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생겼다. 부산에서 멋지게 완성된 ‘침묵의 악장’이 서울 연주에선 ‘박수 빌런’이 등장하면서 아쉽게도 살짝 금이 갔다. 그것도 20여 초 간격으로 두 번이나 터져 나온 박수로 인해 마지막 감동과 여운을 즐기려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은 두 번이나 등장한 박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 지휘자의 손은 천천히 내려왔고, 대부분의 청중은 중간 박수에 휩쓸리지 않고 기다렸다. 청중의 자세가 감동의 크기를 결정한다더니 딱 그 상황이었다.
연주는 전반적으로 만족감을 주었다. 특히 절정의 4악장에서 보여준 부산시향 연주는 박수갈채를 받기에 충분했다. 섬세한 연주로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을 잡아 준 악장은 물론이고 비올라·첼로 수석의 명징한 선율, 그리고 호른과 트럼펫, 오보에와 플루트 등 중간중간 이루어진 실내악 앙상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1악장에 잠시 등장한 ‘베이스 차임’ 연주도 눈길을 끌었다. 타악기 주자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직접 연주했는데, 부산 연주 때는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부산에선 다른 크기의 종을 사용했고, 베이스 차임은 서울시향에서 빌렸다고 했다. 말러 악보에는 ‘3 tiefe Glocken’이라고 되어 있는데, 굳이 해석하자면 ‘3개의 깊은(크기가 큰) 종’이라는 뜻이고, 더 깊은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굳이 택한 방법이었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절대 사소하지 않은 대목이기도 하다.
한편 부산 연주에서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앙코르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모르겐(내일)’은 서울에선 본래의 가곡으로 돌아와 소프라노 서예리의 잔잔하면서 생기 있는 음색이 더해지면서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문득 ‘음악회는 끝이 났는데 쉽사리 일어설 수 없었다’는 어떤 평이 기억났다. 말러 교향곡 9번 연주가 남긴 여운 덕분이다. 이날의 공연도 비슷했다. 결국 음악이 주는 감동이란 건 완벽함보다는 얼마만큼 감동을 줄 수 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2023 교향악축제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한 부산시향의 여러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