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영아에 대한 범죄의 인식 제고
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최근 어린 아기 대상 흉악 범죄 빈발
영아 살해, 대부분 집행유예 선고
한국 형법만 시대 상황 못 따라가
8년간 출생 신고 안 된 아동 2236명
국가 시스템 벗어나 사회적 보호 결여
국가, 출생·육아 전면적으로 나서야
형법 제251조 영아살해죄. 법대에 입학하고 형법을 처음 공부하면서 의아했던 법조항이었다. 직계존속이 어떤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일반 살인죄보다 감경해서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영아살해죄, 영아유기죄를 일반인에 한 죄보다 감경 처벌하는 근거는 뭘까.
최근 냉장고에서 아기 시신 2구가 발견되고, 쓰레기봉투에 든 아기 시신이 발견되는 등 연일 매스컴에서는 어린 아기들에 대한 흉악 범죄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다.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작고 가여운 생명체에 가한 그 무섭고 잔인한 행동이 무슨 근거로 감경 처벌이 된다는 것인지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존속살해를 했을 때는 가중처벌을 받고, 영아 살해를 했을 때는 감경처벌 받는 법의 취지를 사뭇 이해하기 어렵다.
영아살해죄는 1953년 형법제정 당시 해방 후의 혼란했던 치안 상황과 한국전쟁 전후의 찢어지게 가난했던 특수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제정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때의 시대상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외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프랑스는 1992년, 독일은 1998년 형법 개정을 통해 영아살해죄를 폐지했고, 일본과 미국은 영아살해죄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는데, 우리 형법만 이렇게 게으른 걸음을 걷고 있다.
‘영아’와 ‘사람’은 어떤 기준으로 구별이 될까. ‘영아’의 사전적 의미는 ‘젖을 먹는 어린아이’이다. 1960년대에 생후 2개월의 아이를 살해한 사건에서 1심 재판부가 일반 살인죄를 적용하여 처벌하자, 피고인은 영아살해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항소한 사건이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영아 살해의 객체가 되는 것은 산모의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생존아를 말하는 것으로, 생후 2개월을 경과한 때에는 형법에 규정된 영아라고 인정할 수 없고, 일반살인죄를 적용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영아살해죄의 영아는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로 객체가 한정되지만, 영아유기죄의 경우에는 분만 직후의 영아에 국한되지 않고 유아가 되기까지의 젖먹이 아이는 모두 포함된다고 보고 있는데, 그 ‘영아’라는 기준 자체가 애매모호하다.
영아살해죄가 일반살인죄보다 감경처벌이 되다 보니, 검찰은 사안에 따라 영아 살해 사건에서 법정형이 더 무거운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울산에서 산모가 근무하던 주유소 여자화장실에서 남자아이를 출산하게 되자, 직원 숙소에 있던 생활용 쓰레기가 담긴 비닐봉지 안에 아이와 태반 등을 집어넣은 다음 인근 공터에 유기하여 결국 아기가 저체온증 등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경찰이 영아살해죄로 송치하자, 검찰은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해 구속기소하기도 하였다.
영아 살해죄에 대한 판례를 검색하면,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사례가 많다. 재판부에 눈물로 반성하고 경제적·상황적 어려움을 호소하면 선처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 그 시절보다 사회 안전망도 두터워졌고, 가정 위탁, 입양 등 달리 선택할 수 있는 복지 제도도 갖추어졌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변명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그만큼 시대 상황도,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진 것이다. 영아와 사람의 생명을 달리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아동 학대에 대한 엄벌을 강조하는 마당에, 현행 영아살해죄, 영아유기죄는 시대착오적·구시대적 유물로서, 이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영아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제고를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한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는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외치는 와중에, 이렇게 세상에 태어나 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황망히 떠난 아이들을 보면, 그 어떤 출산 정책보다 우리 곁으로 온 아이들을 잘 보살피는 걸 더 중점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동안 태어났지만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총 2236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1%인 23명의 상태를 확인했더니, 사망하거나 유기되거나 익명의 제3자에게 넘겨진 아이가 5명에 이르렀단다. 출생 신고가 안 되었다는 것은 국가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사회적 보호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동의 출생 미등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통보제와 보호출산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졸속법안이 아닌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마을의 공동체 인식이 부족한 지금은 국가가 출생과 육아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아이가 있어야 우리의 미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