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차가 먼저… 표지판만 ‘보행자 우선도로’
시행 1년 다 돼 가지만 유명무실
보행자 위협 운전 범칙금 물지만
경적 울리고 행인 추월하기 일쑤
전포동 카페거리 등 13곳 지정
도로 정비 등 예산만 62억 들여
안전 보장할 실질적 대책 필요
도로에서 차량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보행자 우선도로’ 시행 1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차가 먼저인 도로로 기능해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행자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할 실질적인 대책 필요성이 제기된다.
26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 젊음의 거리 보행자 우선도로. 대학가 근처라 식당과 카페가 많고 보행자 통행이 항상 많은 구간이지만 불법 주·정차된 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빠르게 달리는 택배 차량이나 배달 오토바이까지 더해져 사고가 일어날 뻔한 아찔한 상황이 빈번하게 연출됐다. 보행자 우선도로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경적음을 울리거나 보행자를 추월하는 차량이 대부분으로 보행자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생 이 모(23) 씨는 “도로 가운데로 지나가면 뒤에서 차가 경적음을 울리는 경우가 많다”며 “운전자가 보행자 우선도로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12일부터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차량보다 보행자의 통행을 우선하는 ‘보행자 우선도로’가 도입됐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보행자 안전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이면도로 등을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하고 속도저감 시설이나 안전표지 등 보행자 안전을 위한 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경찰은 필요시 보행자 우선도로의 차량 속도를 시속 20km 이하로 제한할 수 있다. 보행자를 추월하거나 위협적으로 운전하면 범칙금 최대 9만 원과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제도가 시행된 지 1년 가까이 됐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부산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해 7월 8개 자치구의 13곳(49개 구간), 총연장 7996m 구간을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했다. 시는 3곳(금정구 구서역 일원, 금정구 부산대학로 인근 구간, 영도구 해동병원 일원)을 추가로 지정할 계획이다. 도입 취지대로라면 보행자 우선도로에서 보행자는 도로 전 구역을 통행할 수 있고 운전자는 제한속도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서행해야 한다.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되는 곳은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힘들어 사고 위험이 높은 구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영구 수영팔도시장, 전포동 카페거리 등 유동인구가 많은 보행자 우선도로에서는 여전히 보행자들이 주차된 차량 사이나 빠르게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차를 피해 길 가장자리로 걸어야만 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어린이 보호구역과 달리 보행자 우선도로 단속 건수 통계는 따로 집계되지 않는다. 통계가 없다보니 제도의 실효성을 체감하거나 보완점을 마련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처럼 제도 실효성은 떨어지는데 도로 정비에만 예산이 사용돼 사실상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시는 보행자 우선도로 13곳에 총 62억 2000만 원(국비 27억 1000만 원, 시비 22억 5500만 원, 구비 12억 5500만 원)을 투입했다. 대체로 도로 정비와 표지판 조성 등에 예산이 사용됐다.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 최재원 교수는 “사고를 줄이는 방법으로 속도저감 시설물 설치와 교육, 단속이 필요하다”며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힘든 곳에서 보행자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보행자 우선도로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계도가 우선적으로 필요하고 속도를 줄일 수 있도록 시설물 설치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차가 빠르게 지나가지 못하도록 보행자 안전이 우선인 곳으로 공간을 조성하려고 계속 노력 중”이라며 “구·군별로 실효성 있는 시설을 확대 조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