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통영 군부대 진출입로 땅 주인 몰래 개설 논란
지주 “동의한 적 없다” 국가 소송
국방부·통영시 불법 묵인 의혹
부지사용 허가 동의서도 엉터리
너도나도 “우리는 모른다” 뒷짐
경남 통영시의 한 군부대 진출입로가 땅 주인 몰래 개설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다. 1km가 넘는 산길을 콘크리트로 포장까지 해놨는데, 통영시와 국방부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며 뒷짐지고 있다. 석연찮은 책임 회피에 애꿎은 지주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27일 통영시와 국방부에 따르면 해당 진출입로는 육군 제8358부대 1대대 예하 명지소초에 장병과 물자를 수송하는 전술도로다. 폭 3~5m, 길이 1.2km다. 문제는 도로가 지나는 땅 대부분이 사유지인데, 지주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누가, 언제 만든 것인지 조차 불분명하다. 현재 조회 가능한 공문서를 보면 명지소초 통행로는 ‘1982년 통영시 산양읍장이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농로·전술도로 개설을 위한 공원점사용 협의를 득했다’는 내용만 존재한다. 개설 주체는 ‘확인 불가’다.
그나마 위성사진을 통해 애초 사람만 오갈 수 있을 정도였던 비포장 산길이 2007년을 전후해 차량 통행도 가능한 콘크리트 도로로 확포장된 것을 알 수 있다. 낭떠러지와 맞닿은 800m 구간과 굽은 길목에는 차량 추락을 막아 줄 철제 난간과 차량 교행을 돕는 반사경도 설치됐다. 모두 적잖은 예산이 필요한 사업이지만 통영시와 국방부는 ‘우리는 공사한 적이 없다’며 모르쇠다.
심지어 소초가 자리 잡은 곳은 국립공원 구역이다. 자연공원법에 따라 나무 한 그루를 베도 반드시 국립공원공단의 행위허가를 받아야 한다. 남의 땅이라면 ‘토지소유자 사용승낙서’가 필수다. 그런데 대규모 산림 훼손이 불가피한 대형 공사를 국립공원공단은 허가해 준 적이 없다고 했다. 누가 했든지, 불법을 자행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초 산양읍장이 공원점사용 협의 때 제출한 지주 동의서 역시 엉터리였다. 산양읍장은 당시 지주 3명이 날인한 동의서를 첨부했다. 하지만 해당 토지 폐쇄등기부 증명서에는 이들 이름이 없다. 땅 주인도 아닌 사람 명의로 허위 동의서를 만들어 협의를 받아낸 것이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또 있다. 부대 측은 2018년 8월, 도로를 따라 매설된 노후 상수도 배관 교체 공사를 하면서 117보병연대장 명의로 한려해상국립공원 동부사무소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에 실제 토지소유자 22명의 이름과 소재지를 명시한 ‘협조 명단’을 첨부했는데, 정작 중요한 당사자 서명이나 날인이 없었다.
그럼에도 동부사무소는 이를 근거로 통영시에 의견 조회를 요청했고, 시가 ‘토지소유자 동의 받으면 문제없다’고 회신하자 공사를 허가했다. 동부사무소 관계자는 “현재로선 당시 어떻게 (행위허가가) 이뤄졌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신규 개설이 아니라 추가 훼손이 없고 절차상 어긋난 것도 아니라 허가해 준 듯하다”고 전했다.
난데없이 땅을 뺏긴 지주 A 씨는 국방부에 무단 사용 중인 땅을 매입하거나 원상복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국방부는 시간만 끌었다. 참다못한 A 씨는 2019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작년 9월 “토지소유자 동의를 얻어 개설된 것인지 불분명하다”며 A 씨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동의 없이 A 씨 토지를 통행하거나 사용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사실상 도로 폐쇄다. 일반 도로와 연결된 진입부가 모두 A 씨 땅이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뒤늦게 반쪽짜리 협상안을 제시했다. 문제의 도로가 관통하는 A 씨 땅 4필지 10만여 ㎡ 중 실제 도로가 난 3020㎡ 부분만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A 씨는 필지 통매입을 주장하고 있다. 도로가 땅 중앙을 지나고 있어 잘라 팔면 남은 땅 가치가 급락한다는 이유다. A 씨는 “행정기관의 불법과 묵인 속에 멀쩡한 사유지가 일반인은 접근도 하지 못하는 금단의 땅이 돼 버렸다”며 “잘못이 있으면 책임지고,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에 대해 통영시는 일단 사법부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도로 지정도 안 된 상태라 관리 주체도 불분명한 길이다. 확정판결이 나오면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든, 산지를 도로로 바꿔 양성화하든지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