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은 '어음', 사우디는 '현금'이었다
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사우디, 엑스포 정신 벗어나 선심성 득표전
BIE 회원국 입장에서 솔깃하지 않을 수 없어
“PT 대성공” 흥분 가라앉히고 현실 직시해야
지난주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가 열렸다.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한 4차 프레젠테이션(PT)에서 한국이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리야드)와 이탈리아(로마)를 압도했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가수 싸이와 성악가 조수미, 건축가, 스타트업 대표 등 다양한 분야의 연사들을 캐스팅해 짜임새 있고, 호소력 넘치는 PT로 극찬을 받았다.
“PT 내용과 형식에서 경쟁국을 압도했다”(최태원 엑스포유치위원장·SK 회장) “6개월 늦게 시작했지만 PT가 잘됐고, 사람들이 다른 어디보다 부산을 좋아할 것 같은 느낌”(정의선 현대차 회장) “대통령도 4차 PT에 굉장히 만족했다. 한국이 잘했다는 게 BIE 대표들의 중론”(박형준 부산시장). 야당도 모처럼 칭찬에 가세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첨단 기술과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을 어필하고, 국제사회로부터 받았던 도움을 보답하겠다는 내용이 공감대를 얻었다”(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
그럼에도 BIE 회원국 입장에서는 사우디의 PT 메시지가 훨씬 와닿았을 것이라는게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사우디는 회원국들이 아쉬워하는 부분, 그들의 니즈(Needs)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대부분 국가는 엑스포가 얼마나 의미 있게 치러지느냐보다 자기 나라에 어떤 실익이 있느냐에 더 관심이 많다. 이번 사우디 PT의 핵심 메시지는 “Our Expo will be Built by the world, for the world”였다. 세계가 함께 엑스포를 만들고, 세계가 함께 득을 보자는 것이다. 오일머니가 넘치는 사우디가 엑스포 시설과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참여하라고 속삭이는데 군침이 돌지 않을 나라가 있을까.
사우디 투자부 장관은 PT에서 엑스포를 위해 78억 달러(약 9조 3600억 원)를 투입하겠다면서 전 세계 130개국, 2만 5000개 회사에서 80억 명이 고용될 것이라고 목에 힘을 줬다. 사우디의 ‘One Nation, One Pavillion’ 공약도 가난한 나라들에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하나의 국가마다 하나의 전시관을 주겠는다는 것이다. 3억 4300만 달러(약 4200억 원)를 전시관 건설과 유지·보수에 내놓겠다고 했다. 그동안 독립된 전시관을 마련할 수 없었던 아프리카나 태평양 도서국가에게는 가뭄에 단비였을 것이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최고경영자는 영상 PT에서 저개발국가에 ‘에너지 전환’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표심을 자극했다.
PT 연사 6명 가운데 여성이 3명이나 등장한 것도 의외였다. 사우디는 여성들이 아직도 히잡을 쓰고 다녀야할 정도로 인권 후진국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조경 건축 책임자(라미아 알 무한나), 건축가이자 미술감독(누프 알 모니프),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리마 빈트반다르 알 사우드 공주) 등 3명의 여성을 내세워 편견을 잠재우려 했다. 초대형 허브 공항인 ‘킹 살만 국제공항’ 신설, 공항에서 엑스포 장까지 5분 내 도착하는 교통체계, 신속·편리한 입국을 보장하는 ‘엑스포 특별비자’ 등도 솔깃하게 들렸다.
한국은 이번 PT에서 △기후 위기·디지털 격차 등 인류적 과제 해결 △국제사회와의 개발 경험 공유 △ 미래세대를 위한 가치 플랫폼 구축 △자연과 인간의 조화 등을 내세웠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당장 절실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윤 대통령이 “110개 이상의 엑스포 참가국들에게 사상 최대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이 구미를 당겼다.
이날 PT에서 우리는 “Busan is Ready”(부산은 준비됐다)가 슬로건이었다. 반면 사우디는 “Riyadh is Ready TODAY”(리야드는 오늘 준비가 다 됐다)를 강조했다. 우리는 미래를, 사우디는 현재를 약속한 셈이다. 결국 사우디의 ‘현금’에 한국이 ‘어음’으로 맞서는 모양새였다.
개최국 선정 투표까지 이제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이번 총회 직후 사우디의 선심성 득표 전략을 깰 수 있는 치밀한 대응수단 마련에 들어갔다고 한다. 엑스포를 유치한답시고 유권자들에게 대가를 약속하는 매표 행위는 ‘인류 공동 번영’이라는 엑스포 정신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금전적 거래가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우리의 ‘어음’이 사우디의 현금보다 훨씬 믿을 수 있는 신용자산이라는 점을 회원국들에게 각인시켜야 할 때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