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그럴싸’ 하면 통과… 기술공모 검증 시스템 ‘구멍 숭숭’
부산경상대 교수 등 구속 송치
친환경 제품 둔갑 국비 빼돌려
교육부 등 시제품 확인 안 해
과기부는 보고도 보조금 지급
중복 제출·허위 서류 못 걸러
나무를 덧댄 조잡한 자전거 등 가짜 친환경 제품으로 국가 기술 공모에 응모하고 수억 원을 빼돌린 일당이 적발(부산일보 6월 20일 자 8면 보도) 되면서, 기술 공모 사업의 허술한 응모작 검증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조잡한 시제품에 여러 국가 기관이 속아 넘어갈 정도로, 응모작에 대한 검증이 부실했다는 지적이다.
28일 부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부산경상대 교수·교직원 일당 3명이 친환경 신형 제품이라고 속여 국가보조금을 빼낸 국가 기술 공모는 모두 6건(교육부 사업 1건, 중소벤처기업부 사업 1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업 4건)에 이른다. 알루미늄 뼈대를 나무 몸통으로 가린 ‘목제 자전거’, 기존 제품에 스티커 등으로 상표를 가린 신형 유모차 등이 범행에 이용됐다.
이 중 공모 주최 측이 실물 검증 자체를 하지 않은 곳은 교육부와 중소벤처기업부다. 교육부는 산학협력 사업 대상으로 선정한 경상국립대가 해당 업체와 프로젝트를 진행해, 책임은 경상국립대에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학에 응모사업 자체를 위임할 경우, 해당 대학 구성원의 프로젝트를 철저히 검증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교육부 산학협력취창업지원과 관계자는 “사업계획서를 보고 지원 대학을 가렸으며, 이 단계에서 교육부가 직접 시제품을 확인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부 역시 시제품이나 완성 제품을 보지 않고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술개발에 중점을 둔 공모 사업이다 보니, 제품의 완성도를 별도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허위 영수증을 만들고 사업이 진행되는 듯한 시늉만 해도 보조금 수령이 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중소벤처기업부 기술개발과 관계자는 “연구개발계획서를 보고 지원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시제품 제출이 필수사항은 아니다”며 “이후 최종적으로 설정한 목표가 제대로 수행되었는지를 중점으로 파악한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은 제품을 확인하고도 계속 보조금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조잡한 수준의 제품이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일단 응모에 선정되고 나면 관성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대구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은 교수 일당에게 사용된 지원금을 환수하고 정부 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행정처분을 진행 중이다. 재단 측 관계자는 “당시에는 연구 개발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판단해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가짜 친환경 자전거와 유모차 등으로 여러 공모 사업에 지원해 국가 보조금을 탄 낸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각 기관들이 해당 업체가 타 기관에서 어떤 지원과 보조금을 받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보니, 비슷한 허위 제품으로 여러 국가 기술 공모에 응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남부경찰서는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에 업체의 보조금 수령 내역에 대한 중복 체크를 강화하는 시스템 개발을 건의한 상태다. 남부서 관계자는 “1억 원 이하의 소액 정부 보조금을 받은 경우에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남부서는 부산경상대학교 부동산과 교수인 40대 A 씨와 B 씨, 교직원 40대 남성 C 씨를 국가보조금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