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재량에 달린 피해자 알 권리… “공판 기록 열람 법제화”
입법조사처 범죄피해자 개선안
‘부산 돌려차기’로 필요성 부각
절실함 감안 예외적 경우만 제한
불허 사유 통보·불복 수단 마련을
피해자가 자신의 사건에 대해 재판 기록 열람을 신청하면 원칙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일부 예외적 경우에만 이를 배척하도록 제도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국회에서도 나왔다. 판사의 재량에 의해 휘둘리는 피해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9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이슈와 논점: 범죄피해자 공판기록 열람·등사제도 개선방안’을 통해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배제하는 현 제도를 지적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앞선 〈부산일보〉 ‘제3자가 된 피해자’ 기획보도(부산일보 5월 3일 자 1면 등 보도)에서 지적했듯이, 현행법상 범죄 피해자는 자신의 재판 기록 접근에 한계가 있다. 피해자가 직접 수사기관에 신청할 때만 재판 기록과 증거의 열람·등사가 가능하며 이마저도 재판장의 허가가 필요한 상황이다. 재판장에 의해 요청이 거절된 경우 피해자는 이에 불복할 수 없다. 사실상 피해자에게 사건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재판부의 ‘재량’에 맡겨둔 셈이어서 정보 공개나 통지 제도가 명목에 불과한 셈이다.
실제 기억을 잃은 채 CCTV 사각지대에서 폭행당했던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와 ‘초량동 노래주점 폭행’ 사건의 피해 가족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공판 기록과 사건 증거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답답함을 느꼈으며, 보복 범죄 등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실은 피해자의 공판 기록 열람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제도 도입으로부터 약 16년이 경과한 지금 피해자 열람·등사 제도의 구체적 운용 통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피해자 공판기록 열람·등사에 관련된 지적들이 단순히 허가나 불허 건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초 통계조차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입법조사처는 재판 기록에 대한 피해자의 열람·등사를 원칙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를 제한하는 형태를 통해 피해자의 알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재판장의 열람·등사 거절 시 불허 이유를 통보하고 피해자의 불복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법원 또한 사건의 정보에 대해 피해자가 갖는 절실함을 조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재판 기록에 대한 열람·등사 청구를 적극적으로 허용해 그들의 절실함을 해소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는 ‘피해자’이자 ‘증인’이기에 재판 기록 공개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관련 정보의 확인은 무의식적으로 피해자의 기억을 왜곡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특정한 의도가 있는 경우 재판 기록을 살펴 전략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증언을 취사하거나 변형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보고서를 발간한 입법조사처 김광현 입법조사관은 “피해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고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법 개정에 앞서 실무 과정에서도 피해자의 답답함과 절실함을 고려해 재판 기록의 열람·등사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