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인 스탠퍼드대 마크 테시어 라빈(63) 총장이 과거 자신이 쓴 논문이 데이터 조작 등 연구 부정 행위가 있었다는 조사 결과에 승복하고, 대학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총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왜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가? 한국에는 대학 책임자가 학술지에 출간한 논문을 그대로 영어로 번역해 외국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도 비양심적이고 불법 행위인데, 논문 인용 표기까지 생략하며 게재하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윤리 위반 행동을 다수 저질러 놓고도, 정작 당사자는 연구 부정 행위가 아니라고 잡아떼며 버티고 있다. 자신의 연구에 책임을 지고, 대학의 명예를 위해 사퇴하는 라빈 총장의 책임 정신이 부각되는 대목이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사퇴도 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주변에 힘을 가진 자를 따르는 이익 패거리 카르텔이 그 책임자를 사퇴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런 추종 세력을 믿고 배짱을 내미는 책임자들도 허다하다. 이렇게 ‘연줄 패거리 카르텔 집단’은 자신들만의 이익만 좇고 있으므로 구성원 중 일부가 큰 잘못을 저질러도 집단의 압도적인 힘으로 사퇴를 막는 이상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 사회를 ‘내 편이면 무죄’라는 ‘막가는 집단’으로 추락시킨 부패 세력은 바로 이런 ‘이익 카르텔 집단’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고, 그 결과 책임지는 사람도 없으며, 다만 존재하는 것은 ‘이익 패거리 카르텔’의 만용과 패악질뿐이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의 경우도 책임지는 공직자가 없었다. 왜 나만 책임져야 하는가? 이런 억지가 판을 치고 있는 원인 중 또 다른 이유는 ‘연줄 카르텔’이란 거대한 그물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권력자와 연줄 관계이면 (학연·지연 등) 이상한 괴력을 발휘해 처벌은커녕 사퇴를 면하게 해 주는 것 같다. 게다가 한국 국민 대중의 정서는 솔직하게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반면 억지와 배짱을 부리는 태도가 더 당당하게 보인다는 잘못된 생각이 많이 깔려있다고 본다. 심지어 잘못해도 절대로 먼저 사과하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따라서 이런 적폐가 사라지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개혁할 수 없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는 책임지는 지도자가 없다. 최근 집중호우로 충청과 경북 지역에 물난리가 났다. 그러나 물난리가 난 그 시점에 다른 행보를 보인 지자체장은 주말에 공직자도 사생활이 있다며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외에서는 폴란드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나라가 물난리가 났는데도, 우크라이나 방문을 강행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물론 개인의 판단과 행동은 자유이다. 그러나 공직자는 개인적인 자유보다 공직의 무게를 더 중시해야 한다. 국내에서 물난리가 난 시점에 대통령이나 국토부 장관이 재난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남의 나라 자유와 안전을 위해 미군 파병을 결정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책임 정신은 무한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마치 가정에서 장녀가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을 하는 책임 정신과도 같다. 그렇게 장녀가 가장 노릇을 해 동생들을 공부시켜 주었더니,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고, 그들이 잘나서 밥 먹고 공부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동생들의 이기적인 인성을 올바르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이 큰언니인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이 바로 책임 정신인 것이다. 나라 건국을 위해 희생하고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했지만, 부정부패로 하야를 당하고, 독재자로 매도를 당해도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반성하는 것이 진정한 책임 정신이다.
홍진옥 전 인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