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로봇 지휘자 ‘에버6’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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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로봇의 발전 양상이 갈수록 가파르다. AI가 지적인 성과를 넘어 음악과 문학, 미술 등 예술 장르에서 인간의 것과 구별이 힘든, 아니 더 높은 경지의 작품을 쏟아내는 요즘이다. 이제는 인간의 감정마저 빼닮은 AI의 출현도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나온다. AI가 두뇌라면 로봇은 육체성을 상징한다. 이 둘이 얼마나 정밀하게 결합하느냐는 인류 미래의 모습을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다.

문학이나 영화의 상상력으로만 가능했던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현실화했다. ‘인간을 지휘하는 로봇’이 등장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펼쳐진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이 그 현장인데, 여기서 상반신만 인간형인 로봇 ‘에버6(EveR-6)’이 지휘를 맡았다. 로봇이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나선 국내 첫 사례다. 세계 무대에선 이미 낯설지 않다. 2008년 일본 혼다가 만든 로봇 ‘아시모’가 디트로이트 심포니를 지휘하면서 첫발을 뗐다. 이후 일본은 2018년 ‘알터2’와 2020년 ‘알터3’이라는 로봇 지휘자를 연속 배출했다. 스위스가 만든 로봇 ‘유미’도 있다. 2017년 이탈리아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협연했다.

에버6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것이다. 에버는 인간을 대신하거나 인간과 협력할 수 있는 이른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에버 시리즈 1~5 버전은 그동안 가수, 소리꾼, 성악가 역할을 맡아 문화예술계에 일대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이번 여섯 번째 버전에서 에버는 완전한 지휘자로 거듭났다. 지휘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상호 교감과 조화로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영역이다. 국내 처음, 세계 두 번째로 로봇 ‘에버’ 시리즈가 나온 게 2006년이었으니 여기에 이르는 데 17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에버6은 예상했던 대로 냉철한 지휘자였다. 사전 입력에 따라 박자와 템포를 한 치 어긋남 없이 밀어붙였고 지휘 동작도 대단히 섬세했다는 평가다. 인간이 따를 수 없는 정확성이야말로 에버6의 장점이다. 반면 그 한계도 분명했다. 이날 번갈아 지휘를 맡았던 부산시향의 최수열 지휘자는 “단원들과의 소통과 교감, 제안과 설득의 과정이 없다는 게 로봇 지휘자의 가장 큰 한계”라고 말했다. 로봇은 가슴과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봇은 급속도로 진화 중이다. 인간의 감수성과 정서까지 대체할 무서운 미래, 그날은 언제쯤일까.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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