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AI 시대 국민, 4비트 시대 정치
김형 정치부 차장
세계경제포럼의 창시자인 클라우스 슈바프가 2015년 제4차 산업혁명을 처음으로 언급한 이후 전 세계는 제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개념과 IT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서 오르내렸으나 최근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결정체가 인류 앞에 던져졌다. 바로 인공지능(AI) 기술이다. IT업계나 학계에서는 챗GPT를 비롯한 AI가 제4차 산업혁명의 마지막 총아로서 시대의 흐름을 주도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압도하고 있다.
인터넷을 넘어 AI 시대로 빠르게 급변하면서 정치권도 새로운 유권자를 마주해야 한다. 정보 유통 경로가 복잡다단해지고 접근성도 높아지면서 누구나 올바른 판단을 위한 폭 넓은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유권자도 능동적 주체로서 스스로 다양한 정보를 검증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정치 지형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권자 변화에 비해 국내 정치권이 국민을 대하는 자세는 퍼스널 컴퓨터 대중화가 시작된 1970년대 ‘4비트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당시는 정보 유통 경로가 제한적이었고 정보도 특정 계층에서 독점하다시피 했다. 국민은 권력에 가까운 일부 정치인 말에 쉽게 현혹됐다. 특정 권력층에 의해 왜곡·편향·과장된 정보가 국민에게 전달되면서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진실’이 ‘거짓’으로 둔갑해도 유권자는 딱히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50여 년이 흘렀지만 정치권은 그 세월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양곡관리법을 비롯해 간호법·의료법 개정안, 방송법 개정안,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과장과 왜곡은 기본이고 ‘가짜 뉴스’도 판친다. 아직도 국민들이 곧이곧대로 믿을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AI를 일상에서 활용하는 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닌가?
이렇다보니 다시 한 번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의 발언을 소환해본다. 약 30년 전인 1995년 이 전 회장은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다. 특정 분야에서 가장 낮은 지위를 통상 ‘삼류’라고 하는데 이 전 회장은 한국 정치를 4류로 깎아내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여전히 ‘1970년대 우물’에 고여 있는 한국 정치는 5류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생산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고 여전히 4비트 컴퓨터 시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국내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가 한둘이겠는가?
그러니 정치에 혐오를 느낀 무당층만 30%가 넘는다. 또 미국 워싱턴을 기반으로 한 초당파 싱크탱크의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이 느끼는 ‘정치적 갈등’ 수준은 주요국 1위라는 결과도 나왔다. 응답자의 90%가 '서로 다른 정당 지지자들 간에 갈등이 있느냐'는 물음에 '강하다' 또는 '매우 강하다'라고 응답했다. AI 시대, 온갖 정보로 무장한 유권자가 정치를 바꿀 시점이 됐다. 여전히 오만한 정치권 스스로 변하지 못하고 있으니 국민이, 유권자가 정치를 바꿀 수밖에 없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거대 정당이 주장하는 거짓을 검증하고 또 정치인들의 일탈을 찾아내 표로 냉철하게 심판해야 한다. AI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똑똑한 유권자가 많아지면 국내 정치권 변화의 단초가 될 것이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