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 가다 보니 저절로 힐링…순천 송광사 여행
국내 3대 사찰로 걸출한 스님들 배출한 수행 도량
유구한 역사·전설 간직…근엄하고 아늑한 분위기
불일암과 무소유 길에선 법정스님 가르침 전해져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눈과 귀만 열어 두세요’
가끔 떠나는 사찰 여행은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 준다. 산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사찰은 심리적인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고, 자연스레 산행을 겸할 수 있어 좋다. 사찰에 가면 세속에 머물며 했던 속에 없던 말들이나 의례적인 말과 행동을 굳이 하지 않아도 돼 더욱 좋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묵언 수행’(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는 참선)처럼, 오로지 눈과 귀만 열어 두면 된다.
가까운 지인은 삶이 고되고 머리가 복잡할 때 전남 순천 송광사를 찾는다. 송광사로 훌쩍 떠나는 것이 자신만의 일상 치유법인 셈이다. 송광사의 화려하지 않지만 근엄하고 아늑한 기품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리게 한다. 법정스님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17년간 머물렀던 송광사의 산내 암자 불일암과 그가 걸었던 ‘무소유 길’은 송광사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법정스님 불일암과 무소유 길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三寶)사찰로 꼽힌다. 삼보사찰은 경남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전남 순천 송광사 셋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중요한 3대 사찰이다. 불가에서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 맥을 잇는 승가를 3가지 보배로 여긴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는 불(佛)보사찰, 부처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 경판을 소장한 해인사는 법(法)보사찰, 수행을 중시하는 도량(총림)으로, 훌륭한 스님을 많이 배출한 송광사는 승(僧)보사찰이다. 송광사는 통일신라의 승려였던 혜린 선사가 ‘길상사’라는 절을 지은 것에서 비롯됐다. 작은 절이었지만 고려 시대 조계종(우리나라 불교 최대 종파)의 창시자인 지눌스님이 머물며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하면서 규모가 커지고, 이름도 송광사로 바뀌었다. 송광사는 보조국사(지눌)를 시작으로 조선 시대 초기 고봉국사까지 16명의 국사(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에게 내리는 칭호)를 배출한 한국 불교의 산실이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등으로 폐사에 이르고 6·25전쟁 등을 거치며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여러 차례 중건과 복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송광사는 대찰이어서 주차장에서 사찰 입구까지 조금 걸어야 한다. 주차장도 넓다. 송광사 입구 앞으로 민박집과 식당이 많은 쪽에 주차장이 하나 있고, 차도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 송광사 입구와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주차장이 하나 더 있다. 송광사 입구까지 많은 차이는 없어 편한 곳에 주차하면 된다. 전국 주요 사찰에서 입장료처럼 걷던 문화재 관람료가 폐지되면서 송광사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송광사와 불일암은 거리가 가깝진 않지만 어렵지 않게 오갈 수 있다. 차례로 들르기 위해서는 어디로 먼저 발걸음을 옮길지 정해야 한다. 불일암 참배 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제한돼 있어 불일암을 먼저 찾는 코스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
너무 늦지 않으려 불일암으로 향한다. 송광사 입구를 지나 계곡 위에 쌓아 올린 다리 위 청량각에 다다른다. 불일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청량각을 건너지 말고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산길을 따라 잠시 걷다 보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불일암(무소유 길)’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안내하는 왼쪽으로 방향을 정한다. 시멘트로 포장된 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다시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길을 선택해야 불일암에 닿을 수 있다. 불일암까지 이어지는 길은 법정스님이 생전에 걸었던 무소유 길이다. 삼나무와 편백, 상수리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에 들어서면 고요의 세상이다. 풍경이 좋고 그윽함이 좋아 발걸음이 느려진다. 이어 하늘을 대부분 가린 대숲이 나타난다. 대나무 기둥 사이사이로 비껴든 햇살은 대나무를 만나 초록빛이다. 산들바람에 대나무 잎이 사각거린다. 대숲을 지나면 불일암에 다다른다.
불일암까지는 첫 번째 갈림길에서 20분 정도 걸린다. 큰 불편함은 없지만 오르막이라 아주 편한 길도 아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무소유 길 곳곳에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쓰인 팻말이 세워져 있다. 불일암은 작은 텃밭 위에 자리하고 있다. 텃밭을 돌아 돌계단을 오르면 돌계단 가장 위쪽에 ‘묵언’이라는 작은 나무 팻말이 놓여 있고, 그 뒤로 살림집처럼 평온한 암자가 있다. 귀퉁이에는 법정스님의 사진이 걸려 있고, 아래 작은 걸상에는 조화와 방명록, 법정 스님의 생애가 간단히 정리된 책갈피, 캐러멜들이 놓여 있다. 마당에는 물이 담긴 주전자와 컵도 있다. 애써 이곳을 찾아온 이들을 위한 법정스님의 선물이다.
법정스님의 유골은 유언에 따라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 아래에 모셨다. 그는 평소 후박나무를 아꼈다고 한다. 후박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상록활엽수다. 그의 가르침은 후박나무를 닮았다. 불일암 참배 시간은 반드시 엄수해야 한다. ‘묵언’이라는 팻말이 강조하듯 정숙함도 필수다.
■승경에 취해 걸음이 느려지다
불일암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은 불일암과 송광사 갈림길 이정표가 있었던 지점으로 돌아가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법과 불일암에서 송광사로 바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는 방법이 있다. 전자가 송광사를 일주문으로 진입해 둘러보는 경로라면, 후자는 송광사 뒤편으로 진입해 송광사를 산자락 위쪽에서부터 보고 내려오는 경로다. 후자를 택해 산길을 따라 송광사로 내려간다. 불일암 입구에 있는 이정표 중 송광사 방향으로 난 산길을 걸으면 된다. 대부분 내리막길이라 크게 힘들지는 않다. 송광사까지는 20~25분 정도 걸리는데,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닿으면, 여기서부터 송광사를 제대로 둘러보면 된다.
송광사 경내에 들어서면 사방이 전각들로 빼곡하다. 그 옛날 송광사는 전각 수가 80여 동에 달해 큰비가 와도 전각 밑으로만 다니면 비를 거의 맞지 않았다는 말이 있었다. 현재는 오랜 세월 외침과 화재 등을 겪은 뒤 중건과 복원을 거쳐 50여 동이 남아 있다. 대웅보전은 정면도 웅장하지만 옆에서 봐도 장엄하다. 승보사찰을 상징하는 승보전은 특히 눈길이 간다. 전각 안에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을 비롯해 1250명의 불상을 모시고 있다. 전각 안을 들여다보면 그 수만큼의 크고 작은 불상들로 가득하다. 승보전 전각 옆에는 송광사의 명물인 비사리구시가 놓여 있는데, 우선 크기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송광사 승려들의 밥을 담아 두었던 것으로, 쌀 7가마(4000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숭유억불’ 조선 시대에도 송광사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송광사가 배출한 16명의 국사 영정을 모시고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국사전, 효봉 스님의 진영을 모신 효봉영각, 해인사의 대장경 4부 중 1부를 봉안(1951년 화재로 소실)했던 설법전, 조선 고종 때 황제의 기도처로 지어졌으며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는 관음전 등이 있다.
송광사는 화려함보다는 엄격함과 진중함이 느껴지는 사찰이다. 보통 사찰에서는 중심 건물인 대웅전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기 마련인데, 송광사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이 대웅전보다 더 높이 있다. 스님과 수행이 중심인 사찰답다. 그래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 많다. 전각 내부와 스님을 찍는 행위도 삼가도록 하고 있다.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종고루와 사천왕문을 지나면 삼청교와 우화각이 나온다. 삼청교는 송광사 경내로 들어가는 계곡 위에 네모난 돌 19개로 만든 다리다. 우화각은 삼청교 위를 덮고 있는 누각이다. 아름다운 풍취로 송광사의 대표적인 포토존이다.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도 배경으로 등장해 반가운 곳이다.
삼청교를 건너면, 돌 무더기에 길쭉하게 하늘로 뻗어 있는 고목이 눈에 들어온다. ‘고향수’로,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짚고 다녔던 지팡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수많은 전란과 화재에도 불에 타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진다는 게 놀랍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를 빠져 나오면 편백나무 숲이 반긴다. 숲 사이 벤치에 앉아 삼림욕을 즐기며 잠깐의 호사를 부려 본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