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조수미 “항상 시작하는 느낌…잔잔하게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가야죠”
‘조수미와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 4일 부산 공연
멋진 앙상블·무대 퍼포먼스에 ‘역시 조수미’ 호평
내년 프랑스에서 본인 이름 딴 국제 성악 콩쿠르 개최
“음악으로 좋은 세상 만들 사람 뽑아서 지원할 것”
‘조수미와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 내한 공연 첫 연주가 열린 지난 4일 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이날 공연은 1500여 명의 관객들로 물결쳤다. 만석이다. 공연이 끝난 뒤 여기저기서 ‘조수미는 조수미다!’ ‘역시, 조수미~’ 라는 말이 쏟아졌다.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정상을 달릴 때와는 다르다고 해도 연륜과 여유가 묻어나는 그의 공연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사람들이 왜 “조수미, 조수미”라고 말하는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무대였다. 성악가로서 환갑이라는 나이가 부담스럽지 않을 순 없겠지만, 그만의 당당함과 매력으로 무대와 객석을 쥐락펴락했다. 앙코르 2곡을 포함해 총 8곡을 부르는 동안, 그는 세 벌의 드레스를 갈아입었고, 익살스러운 퍼포먼스까지 곁들이며 공연장을 찾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행복감에 젖게 했다.
조수미와 처음 앙상블을 이룬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도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첼로라는 악기만으로 오케스트라와 같은 풀 사운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고음 전문 가수가 저음에 특화된 곡들을 함께 연주하면서 소화한 점도 남달랐다.
사전 인터뷰에서 조수미는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는 정말 최고의 연주자들”이라면서 “베를린에서 함께 연습하려고 만났는데, 음악에 대한 프라이드도 강하고 진지할 뿐 아니라 서로가 열심히 하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답변했는데 공치사가 아니었다. 이들은 어떤 때는 한 명처럼 연주하다가도 12명의 솔리스트가 되어 다채로운 음악을 선사했다.
해외에 거주 중인 조수미는 서울 못지않게 부산도 자주 찾는 편이다. 그때마다 전석 매진으로 보답하는 부산 팬들의 관심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매번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질문했다. ‘공연 또 공연’을 쉼 없이 할 수 있는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하고.
조수미는 “꾸준함과 열정, 호기심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부연해 설명했다. “저는 항상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도 제가 어디에 도달했다 이런 게 아니라 항상 궁금하고 배우고 싶어요. 음악을 사람들과 나누고, 주는 것이 예술가에겐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모든 열정을 불태워 공연하는 것이죠.”
얼마 전 직접 심사위원으로 나선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성악)에 대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승자 김태한은 예선 영상에서부터 눈에 띄었다는 것 같아서 처음부터 우승을 예상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수미는 “나이가 굉장히 어린데도 진정성 있게 노래를 한 게 심사위원들에게 큰 감동을 준 것 같다”고 대답했다.
기악과 달리 성악은 언어적인 측면에서 한국인이 불리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세계 정상에 오르는 후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걸 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았다. 더불어 이들이 단순히 콩쿠르 정상에 오르는 것뿐 아니라 롱런할 수 있도록 젊은 성악가들한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들려 달라고 했다.
“제가 태한 씨에게도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 기뻐하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이다. 좀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게 팩트입니다. 1등 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고 내일부터 다시 전쟁이다. 저도 그렇게 살아왔고요. 그리고 꾸준하게 꺼지지 않는 열정이 항상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늘 배워야 하는 자세, 호기심을 놓치지 않아야 해요. 또한 정신적으로 육체적인 관리도 중요합니다.”
후배 성악가를 향한 열정은 내년에 첫선을 보일 자신의 이름을 딴 ‘수미 조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도 엿보인다. 다른 성악 콩쿠르와 차별성이 있다면 어떤 게 있는지, 준비 상황은 어떤지 궁금했다. 꽤 긴, 아주 진지한 답변이 돌아왔다.
“프랑스 근교의 아주 아름다운 고성인 ‘샤토 드 라 페르테 엥보’에서 콩쿠르가 진행됩니다. 오래되고 멋진 성에서 성악가들이 노래하는 장면은 내 소녀 시절부터 꿈이었어요. 차가운 공연장이 아닌, 오페라적인 배경을 지닌, 문화적인 전통이 있는 곳에서 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노래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 확립된 사람을 뽑고 싶어요. 예를 들어 평화를 알린다거나,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 사회를 알리고 싶다는 그런 구체적인 정체성이 잡혀 있는 사람을 뽑고 싶어요. 그저 오페라하우스에서 주역으로 서는 그런 프리마돈나나 디바를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본질적인 이야기지만 사실 음악가로서 가져야 할 의식은 음악을 통해 우리가 이 세계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에 저는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지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제가 이 콩쿠르를 하는 이유고요. 음악을 통해, 음악가라는 직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를 듣고 싶어요. 저에겐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조수미에게도 못다 이룬 꿈이 있을까. 어느새 데뷔 37주년을 맞은 그이지만 여전히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조수미를 보고 있으면 ‘꿈꾸는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의 꿈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묘하게 오버랩됐다.
“제 서랍에 적어 놨던 모든 꿈을 하나씩 하나씩 계획하고 실천하고 그렇게 꾸준하게 살았던 게 이제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서 저 자신이 굉장히 자랑스러워요. 솔직히 말하면 너무 잘했다, 칭찬해 주고 싶어요. 그렇다고 나는 이제 거의 다 했구나 이런 느낌은 전혀 아니고요. 아직도 똑같이 계속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고 제가 할 수 있는 날까지 계획 짜고 또 실천하면서 그대로 그냥 갈 것 같아요. 꾸준하게요. 그러니까 화롯불에 불이 확 붙는 게 아니라 아주 잔잔하게 계속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가는 거죠. 언제까지고 불이 타야죠. 호기심과 궁금함이 언제나 제 안에 있고요.”
한편 조수미는 부산 공연에 이어 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8일 부천아트센터, 9일 강릉아트센터를 돌며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와 함께 무대에 선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