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이민을 마주하는 한국 정치의 얼굴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김기현 대표 중국인 건보 먹튀 반대
이민이 우리 정치 주요 의제로 대두
2021년 국내 외국인 비율 4% 넘어
유럽 반이민 정책의 극우 정당 활개
우리나라 값싼 노동력 수용 논의 수준
인구절벽 시대 현명한 대비 고민해야
국내 거주 중국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 중국인들의 건강보험 먹튀를 막아야 한다. 이 두 문장을 강렬하게 남긴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 정치가 머지않아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 흐름과 함께하는 그 정서, 기존 정치 구도를 뿌리부터 뒤흔든 그 질서, 바로 반이민이다.
6월 20일 김기현 대표는 “중국에 있는 우리 국민에게는 투표권이 없는데 왜 우리만 빗장을 열어 줘야 하는가”라며 ‘중국인 투표권 제한’을 주장했다. 이 이야기가 정부 여당에서 처음 나온 건 아니다. 지난해 12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우리 국민은 영주권을 가져도 해당국에서 투표권이 없는데 상대국 국민은 우리나라에서 투표권을 갖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외국인의 참정권 제한’을 천명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영주권 취득 3년이 지난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당시 한 장관이 중국을 콕 짚은 건 아니지만 국내에서 투표권이 있는 외국인 넷 중 셋은 중국인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외국인 건강보험 또한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 온 문제다. 청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평소엔 미국인으로 살다가 아플 때만 한국인이 되는 ‘검머외(검은 머리 외국인)’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외국인이 납부하는 건강보험료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아 그 부담을 내국인이 떠안고 있다는 불만도 크다. 이 문제는 지난 대선 토론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사실관계부터 정리하자면 지난해 우리나라 외국인 건보재정은 5560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 유일하게 중국만 229억 원 적자를 기록했는데, 일부 직장가입자들이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가족을 피부양자로 올린 뒤 아프면 한국에 들어와 치료받도록 하는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김기현 대표가 지목한 것도 이 부분이다.
이 사안들에 대해선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김 대표의 연설이 얼마 전 있었던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막말 파문을 겨냥한 것이냐 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봤을 땐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건 이민자 문제가 우리나라 정치에서 주요 의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이민이라는 새로운 시대 앞에 놓인 건 분명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외국인근로자·유학생 등을 포함한 외국인 비율은 4%를 넘는다. 부산은 2.2%로 그 비율이 적은 편이었지만, 공업단지나 농촌이 많은 충청남도의 경우 외국인 비율이 5.7%를 넘었다. 코로나19 종식으로 국경이 열린 데 더해 인구절벽에 따른 일손 부족이 심화하면서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외국인 수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이미 부산·서울 등 대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이주노동자 없이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촌은 농번기 일손을 돕기 위해 단기간 체류하는 계절노동자 수를 늘려 달라 아우성치고, 여당 지도부에서도 불법체류자 단속이 지나치면 농·어·산촌의 부담이 가중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새로운 시대에 한국 정치는 어떻게 변모할까? 서방에서 반이민 돌풍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됐다. 오스트리아의 제바스티안 쿠르츠는 외무장관 시절 강력한 반이민 정책으로 인기를 얻어 2017년 불과 서른한 살의 나이에 총리가 되었고, 아버지 장마리 르펜 시절만 해도 프랑스 정치 변방에 머물렀던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은 딸 마린 르펜 시대에 이르러 반이민·반이슬람 물결에 올라타 대권을 목전에 둘 만큼 괄목할 성장을 거두었다. 과거 서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 하는 데 있었다면, 이제는 이민자에 대한 수용도가 그 척도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정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거라는 예상도 이런 배경에서 기인한다.
국민들의 반이민 정서를 자극해 표를 모으는 정치는 쉽다. 반면 사회적 합의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건 어렵다. 현재 세계 곳곳에 둘러쳐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은 그 임상실험의 불행한 성공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까지 논의가 값싼 인력을 얼마나 데려오느냐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아직 표면화되진 않았지만, 이민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할 땐 그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될 것이다. 반이민을 주요 기치로 삼은 극우 정당의 출현과 돌풍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차라리 이대로 머물면 좋겠지만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줄고 있는 우리나라에 선택권은 없다. 분명한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피할 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현명히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