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세상 모든 아버지와 아들에게
김오안·브리지트 부이오 감독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형식적으로는 전후 한국현대미술 제1세대 작가이며 물방울 작업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창열(1929~2021) 화백의 다큐멘터리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영화의 감독이자 화백의 아들인 김오안 감독이 스스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만든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는 “나의 아버지, 늙은 남자이자 고집스러운 생각을 가진 어린아이. 그는 산타클로스보다는 스핑크스에 가깝다”라는 감독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자라면서 가장 힘든 것이 아버지의 침묵이었다’는 감독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때로는 서로의 균열까지 알기에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애정하는 이율배반적인 고통을 덤덤하게 서술한다.
세상과 온전히 조우하지 못하는 남자,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잘 되길 바라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그럼에도 항상 거리가 있는 사람. 그와 나(아들) 사이, 그와 아내사이, 세상 누구와도 거리가 있는 아버지 김창열. 감독의 내레이션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의 아들들이 아버지를 또 다른 자신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어느 지점에 서 있게 된다. 아마 감독은 아버지와 같은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에게도 결국 아버지의 원형이 인처럼 박혔음을 알았을 때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지 않았을까.
격동기를 헤치고 전설이 된 화백의 사연과 곡절은 차고 넘치기에 이야기의 압을 높여 좀 더 극적인 영화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신화적인 아버지를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는 감독의 인터뷰처럼 영화는 결코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과묵한 아버지가 오로지 자신의 아들에게만 할 수 있는 대화를 복기해보면 화가 김창열이 가진 성찰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 다시 깨달을 수 있다.
“하나의 물방울을 그리는 것은 구상이지만 백개 천개를 그리는 것은 계획일 것이다. 하지만 만개 십만개의 물방울을 그리는 것은 ‘어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화 중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이다.
오는 8월 6일까지 진행되는 부산현대미술관의 ‘2023 시네미디어_영화의 기후:섬, 행성, 포스트콘택트존’ 전시에는 100여 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7월 7일 금요일에 마지막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김가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이달부터 부산현대미술관의 전시를 중심으로 현대미술 작품과 작가를 소개하는 ‘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을 매주 목요일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