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결과 따위 중요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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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주)디오시네마 제공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주)디오시네마 제공

언어만이 유일한 소통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미야케 쇼는 이 어리석은 생각을 깨뜨리며 말이 필요 없는 순간들을 그린다. 리듬을 타며 몸을 움직이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상대를 이해해 나간다. 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신뢰가 느껴진다. 익숙한 듯 따듯한 눈빛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거기엔 어떤 언어도 필요 없다. 입꼬리가 씰룩 올라가며 합을 맞추는 스파링과 가벼운 발동작에서 느껴지는 언어들. 바로 그때 관객들은 한편의 무성영화를 보듯, 영화의 리듬에 몰입한다.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선천적 청각장애로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 프로 복서 케이코라는 여성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도쿄 도심의 작고 낡은 그리고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체육관. 그곳에 시합 준비로 땀 흘리며 훈련하는 케이코가 있다. 하지만 이 체육관의 운명은 그리 길지 않다. 케이코가 의지하는 인물, 체육관 회장의 병세가 짙어지면서 체육관을 유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체육관 회원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미야케 쇼 감독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청각장애 프로 복서 케이코 실화 다뤄

16mm 필름으로 아날로그 전면 배치

단순한 스포츠·여성 영화 한정 어려워

케이코는 체육관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머리는 복잡해지기 시작하고, 괜히 화가 나고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결국 그녀는 자기 능력을 믿어준 체육관 회장에게 당분간 복싱을 쉬고 싶다고 편지를 쓰지만 차마 그 편지를 보내지는 못한다. 케이코는 그렇게 방황하며 떠돌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복싱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임을 깨닫는다. 즉 체육관이 사라진다는 것은 자신을 품어 주었던 공간이 상실됨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카메라는 집요할 정도로 케이코의 움직임을 따르는데 16mm 필름이 독특한 분위기를 잘 담아낸다.

코로나 시대에 촬영된 이 영화는 마스크를 쓰는 행위가 입 모양을 읽지 못하는 농인들에게 더한 시련을 안긴다는 사실을 몇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알린다. 재난이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또 다른 재난의 시간을 가져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또한 영화는 ‘소리’에 민감하다. 들리지 않는 케이코를 위해 섬세하게 평소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리게끔 한다. 케이코가 일기를 써 내려가는 소리, 줄넘기하는 소리, 운동 기구의 스프링 소리, 샌드백을 두드리는 소리 등 청각적 감각을 자극하는 소리와 일상의 소음이 귀를 자극한다. 이처럼 영화는 귀가 예민해지게 만든다.

그리고 이 소리는 케이코의 복싱 승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함을 일러주는 것이다. 그래서 미야케 쇼는 요즘 시대와 어울리지 않게,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 것일 테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청년을 위해서 필름만 한 게 없어 보인다. 케이코가 운동하는 체육관, 집과 일터, 회장이 입원한 병원, 전철이 지나가는 강변의 풍경은 16mm 필름과 만나면서 관객 또한 케이코와 함께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니까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단순히 스포츠 영화나 여성 영화라고 한정할 수 없다. 감독의 말대로 “복싱을 다룬 영화지만, 복싱만 다루는 건 아니다. 링 위에서 싸우고 또 링 밖에서 하루를 싸워나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곳엔 청춘을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이 각인돼 있다. 감독의 전작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가 청년들이 상실을 떠안은 채 일상을 버텨내는 모습을 담아냈다면, 이번 영화는 청년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 과정을 탐색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치열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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