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미적인 시적 문장으로 그린 상실·그리움·사랑
배이유 두 번째 소설집 ‘밤의 망루’
8년 만에 7편 묶어내 출간
몸의 주인 되라는 ‘검은 붓꽃’
삶·사랑 실체 잡는 ‘소리와 흐름’
표제작, 카프카 ‘성’ 이미지 품어
8년 만에 7편을 묶었다. 배이유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 <밤의 망루>(알렙)는 시적 경사의 문장으로 탐미적이다. ‘빛이 환하다. 빛의 내부로 들어가고 싶다.’(159쪽) 그의 문장은 세계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통찰의 아름다움도 탐한다. ‘아무래도 이승보다 저승의 힘이 센 거 같아… 아니, 삶이 힘이 더 세’(195쪽).
단편 ‘홍천’은 굽이굽이 휘감겨 흐르는 아름다운 강원도 홍천강의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아름다움에 죽음을 교차시킨다. 서로 얼굴을 모르는 남녀 4명이 강원도 홍천으로 가서 동반 자살을 하려는 것이다. 방에서 착화탄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어디서 로망스 선율이 흐르고 한 명이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루를 선물하는 건 어때요”라고 말을 꺼낸다. ‘하루의 선물’, 그들은 홍천강에서 래프팅을 하게 된다. 그들의 창백한 피돌기에 약동하는 강물의 흐름이 흘러들어가고, ‘그날 뜻하지 않은 물길의 여정은 그들을 다시 삶으로 되돌려 놓았다’. 삶의 실체가 사소하게 보이는 모든 우연과 필연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중 한 명이 삶의 강을 건너가버렸다고 마지막에 살짝 균열을 내놓는다.
탐미적인 그의 문장들은 과연 세계는 그렇게 아름다울까를 생각게 한다. 그 문장들은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의 발견일까, 없는 아름다움의 창조일까, 하는 것이다. 발견이든지, 창조든지 상관없이 세계와 삶을 그리는 글이 아름답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더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작가의 생각인 것 같다.
‘검은 붓꽃’은 도발적인 아름다움을 탐한다. 꽃을 확대해서 그린 조지아 오키프를 가져온 이 단편에서 제목은 바로 ‘그것’을 상징한다. ‘검은’은 싱그러운 탄력의 어린 도우미와 죽음을 마주한 어머니 사이의 그 어디쯤, 작품에서는 쉰을 넘긴 여성 ‘나’를 말하는 빛깔이다. 독자를 도발하는 장면은 ‘나’가 거울로 ‘검은 붓꽃’을 천천히 보는 장면이다. ‘비밀스런 말들을 겹겹의 꽃잎에 담’은 그것이 말을 하는데 그것은 ‘몸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자신 몸의 주인으로 살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옛날에 농담이 있었어’는 작가의 언어적 경사와 농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밤낚시 가서 호래기가 잡힐 때 바다에서 호르륵호르륵 호각소리가 들린다고 하고, 싱글녀가 죽어 하나님 앞에 가서 억울하게 살았다고 하니까 뿅망치로 때려 산더미처럼 쌓인 바나나 트럭 위에 떨어뜨려 주더라나. ‘기묘하고 낯선 말들의 감각이 농담처럼 흘러나’오는 작품인데 우리를 버틸 수 있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한다.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라는 것일 터이다.
삶과 사랑의 실체를 잡으려는 듯 ‘소리와 흐름’ ‘멈춘다 흐른다’, 두 단편은 숱한 문장의 공력을 들이고 있다. ‘소리와 흐름’은 “누구에게나 있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그려냈다”며 지난해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모든 것은 소멸하고, ‘우리는 산란하는 빛과 소리의 흐름, 그 흐름 속에 있을 뿐인데, 바로 그 흐름이 순간에 사로잡힌 영원일 수 있다’는 역설적 문장이 제시돼 있다. 흐름은 흐르면서 ‘순간에 사로잡힌 영원’처럼 멈춰있기도 한 거라는 말이다. 요컨대 인생은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 달라져 있으나 달라지지 않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삶과 사랑의 실체를 잡기도 하고, 놓치기도 한다는 것일 터이다.
표제작 ‘밤의 망루’는 카프카 <성>의 이미지를 오래 품고 있다가 쓴 작품이라고 한다. 불가항력의 본연적 임무, 여인이 가져온 ‘비밀의 검은 꿰짝’을 여는 균열, 사라지는 여인, 불이 난 숲과 함께 타버린 파수꾼에 대한 소문 등 상징적 전개가 이어진다. 어쨌든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이 빚어내는 이러저러한 모습, 그것을 좇는 아스라한 과정, 그것을 상실한 아픔에 닿으려는 것이 그의 소설이고, 그의 문장인 것 같다. 세계와 삶은 아름다울까, 라고 회의하며 캐묻고, 그것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