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연대와 줄탁동시의 지방시대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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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정원박람회로 대박 난 순천시
지방소멸 맞설 대안으로 ‘우뚝’
남해안 관광 시대도 앞장서 견인

지자체 연대부터 차근차근 추진
로컬·중앙은 자치·분권 협업 강화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가능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6월 23일 개장 84일 만에 관람객 500만 명을 돌파했다. 박람회장 안에 마련된 ‘가든 스테이-쉴랑게’는 95%를 웃도는 숙박률을 보여 체류형 관람객 확보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임성원 기자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6월 23일 개장 84일 만에 관람객 500만 명을 돌파했다. 박람회장 안에 마련된 ‘가든 스테이-쉴랑게’는 95%를 웃도는 숙박률을 보여 체류형 관람객 확보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임성원 기자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인가. 최근 들른 전남 순천시 정원박람회 현장은 살짝 흥분이 묻어나는 수군거림으로 들썩였다. 정원해설사는 “좀 있으면 500만 명을 돌파할 것 같다”고 비밀스레 귀띔했고, 현장에서 관계자와 마주칠 때마다 속닥이며 관련 정보를 주고받기에 바빴다. 4월 1일 막 오른 박람회가 개장 84일 만에 2013년 정원박람회 최종 관람객 수 440만 명 기록을 경신한 데다 10월까지 목표 관람객 800만 명의 62.5%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른바 대박이 났다.

박람회 현장에서 전해지는 흥분은 내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 순천에 대한 자랑스러움, 자부심, 무한한 애향심 같은 것이었다. ‘봐라, 전국에서 우리 순천을 보려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있지 않은가.’ 시민의 참여, 공무원의 헌신, 단체장의 철학이 삼위일체가 되어 일군, 지방소멸 시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로컬의 성공 신화가 그곳 ‘생태도시’ 순천에 펄펄 살아 있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재주는 곰이 부리는데 돈은 비단 장사 왕서방이 번다”는 우스갯소리로 대박 난 정원박람회에 흥겨운 추임새를 넣었다. 엑스포로 호텔 등 숙박시설이 뛰어난 여수시에 박람회 관람객이 몰리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근 광양시는 박람회장과 광양 여행지를 연결하는 시티투어를 마련했고, 보성군은 박람회장과 보성 녹차밭, 태백산맥 문학관 등을 잇는 셔틀버스를 운행해 재미를 보는 중이다. 남해안 관광벨트가 그 중간쯤인 순천을 중심으로 꿈틀거리며 살아나고 있었다.

순천은 ‘글로벌 남해안 관광 시대’의 견인차라 할 만하다. 부산과 경남, 전남도는 지난해 12월 ‘남해안 글로벌 해양관광벨트 구축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지난 5일 창원에서 박형준 부산시장, 박완수 경남도지사, 김영록 전남도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남해안 미래비전 포럼’을 개최했다. 순천의 선한 영향력은 남해안 관광벨트의 상생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벌써 기대를 모은다.

남해안 시대는 사실 어제오늘에 나온 말이 아니다. 특히 고질적인 영호남 갈등을 잠재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매력 있는 카드로 여겨졌다. 남부권 경제공동체, 영호남 남부 광역 연합 등의 모색은 나아가 공룡같이 비대해진 수도권에 맞서는, 지방소멸 시대의 새로운 돌파구로까지 부상했다. 최근에는 부산포해전의 부산에서 명량대첩의 전남 진도 울돌목에 이르는 남해를 ‘이순신해’로 부르자는 특별법까지 국회에 발의돼 지역성에다 역사성까지 입혀 ‘남해안 시대’를 추동하고 있다.

본격적인 지방시대를 열어 가기 위해서는 먼저 지방이 꿈틀거려야 한다. 광역 연합이든 메가시티든 지방 간 연대야말로 강고한 수도권 독점체제를 깨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전국의 지자체에서 너도나도 순천을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지역 간 협업과 상생으로 나아가야 서로의 지역에서 우뚝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민선 8기 첫 한 해를 보낸 박형준 부산시장은 최근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산 전체의 조경을 바꾸는 정책을 2년 차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운영 10년이 넘은 부산시민공원과 인근의 어린이 대공원, 부산수목원 등 부산의 주요 공원들을 새롭게 손보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는데, 순천시와의 협업을 고려해 볼 만하다. 순천만의 생태적 성공은 낙동강 하구 살리기에도 힌트를 줄 것이다.

때맞춰 오는 10일 대통령 소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한다.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합한 지방시대위원회는 윤석열 정부의 지방 정책 컨트롤타워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지방시대위원회를 이끌 우동기 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2차 공공기관 이전 계획은 내년 총선 이후에 나올 것”이라고 말한 것은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으로서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발언이다. 수도권 표심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식시키려면 공공기관 이전의 청사진을 분명하게 내놓아야 한다.

“중앙정부는 ‘작은 정부’, 지방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한다”는 지방시대위원회의 방향은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방의 ‘자치’는 키우고 중앙의 권한은 이양을 통해 ‘분권’을 강화하는, 알 속의 병아리는 껍질 안에서 쪼고 어미 닭은 밖에서 쪼는 자치와 분권의 줄탁동시가 있어야 지방시대라 부를 수 있다.

지방시대는 겉만 번지르르한 구호가 아니라 생태적 건강함으로 속을 꽉꽉 채워 나가야 소망스러운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가 더는 구두선에 그쳐서는 안 되며 지방 간 연대와 지방·중앙의 협업으로 로컬에 건강하게 뿌리 내리기를 기대한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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