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기후위기와 반달리즘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스웨덴 기후활동가들이 지난달 클로드 모네의 작품에 ‘페인트 테러’를 하는 장면. AFP연합뉴스 스웨덴 기후활동가들이 지난달 클로드 모네의 작품에 ‘페인트 테러’를 하는 장면. AFP연합뉴스

“우리가 창문을 깨고, 불을 지르는 건 폭력만이 그들이 이해하는 말이기 때문이에요.” 세탁공장 노동자 모드 와츠가 심문 과정에서 한 말이다.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우므로 극단적인 투쟁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서프러제트’(2016)는 20세기 초 영국 여성참정권 투쟁의 역사를 그린 영화다.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은 도심의 건물에 불을 지르거나 짱돌을 던졌다. 이들의 투쟁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전시작품의 훼손으로 이어졌다. 문화유산이나 예술품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 일컫는다.

최근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와 ‘씨 뿌리는 사람’,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가 변을 당했다.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과 라스트 제너레이션(Last Generation)과 같은 유럽의 기후환경운동 활동가들이 주도했다. 환경 테러리스트(Eco-terrorist)라 불리는 이들의 행위는 화석연료 사용을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다행히 야채수프, 으깬 감자, 풀과 같은 물질을 사용한 까닭에 작품을 치명적으로 훼손하지는 않았으나 처벌을 면하기는 어려웠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제껏 기후활동가들은 탄원서를 제출하거나 가두시위와 같은 합법적인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음 선택지는 극단적 투쟁 방식이었다. 영국과 네덜란드, 이탈리아의 저명한 미술관에서 잇따라 벌어진 반달리즘에 세계가 경악했다. 비난이 쏟아지자 이들은 당당하게 되묻는다. “그림을 지키는 일이 지구와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까?” 화석연료 사용 중단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관련한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이나 시민의 행동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어도, 시위 방식을 두고 전지구적인 논란이 촉발된 만큼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약자의 절박한 목소리를 숫제 무시하고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들의 과격한 행동에 비난과 조롱을 퍼붓는 일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어떻게 말을 해야 세상이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기후위기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인류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다. 그런데도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시각과 셈법은 가치관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사뭇 다르다. 기후위기 문제를 사유화하거나 정치적 이슈로 만드는 일도 적지 않다. 법적 처벌을 무릅쓰고 반달리즘이라는 비난마저 감당하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이들의 행위를 쉽게 비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예전 같지 않은 염천과 장마를 오가는 이 계절이 해를 거듭할수록 두렵다. 인간이 자연에 가한 반달리즘의 대가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